지난주에 친구들과 짧은 여행을 다녀왔는데요. 그곳에서 한 커플이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그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남자는 “알았어. 미안해. 이제 안 그런다고.” 라는 말만 반복했고. 여자는 “미안하다고 하면 다야? 맨날 그런 식이잖아.”라며 돌아섰습니다. 트렁크를 끌고 멀어져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남자를 보면서 문득 이 커플에게 “미안해.”라는 말은 서로에게 어떤 메시지로 쓰였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심리상담가 Gary Chapman은 사람은 누구에게나 주된 사과의 언어가 있다고 말합니다. 상대방이 잘못했을 때 누군가는 “미안해.”라는 말 대신 “나 때문에 얼마나 속상했니?”라는 말을 더 듣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혹은 “내 책임이야. 내가 잘못했어.”라는 책임을 인정하는 말을 듣길 바라기도 하고요. 혹은 사과 대신 묵묵히 행동으로 보여주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Gary Chapman은 사람들이 바라는 사과의 방법이 다 다르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각자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무의식적으로 습득한 사과의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죠. 그는 대략 다섯 가지 정도로 사과의 언어를 정리했는데요.
1 마음을 읽어주는 사과
상대에게 잘못했을 때 우리는 보통 “미안해. 이제 안 그럴게.” 라든지 “미안해.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길 바래?”라고 방법론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과보다는 정서적인 사과를 받았을 때 풀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단은 속상했던 마음을 헤아려줄 때 엉킨 마음이 풀어지는 거죠. 이렇게 마음을 읽어 주는 사과를 더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예를 들어 차가 밀리는 바람에 늦어서 상대가 많이 기다렸다면 “미안해. 차가 많이 밀려서 늦었네. 내가 맛있는 거 사 줄게.”라고 사과하는 것보다는 “아, 날도 추운데 많이 기다렸지? 나 기다린다고 초조하고 짜증났겠다.” 이렇게 상대의 감정을 먼저 읽어 주는 게 좋습니다.) 이렇게 감정을 충분히 읽어 준 다음에 사과해야 자신이 충분히 존중받는 느낌이 들어 마음의 문을 여니까요.
2 책임을 인정하는 사과
문득 책임을 인정하는 사과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제가 사회생활 초반에 인턴으로 일했던 회사의 대표 생각이 납니다. 어느 날 제작에 문제가 생겨서 제작 팀장이 대표에게 죄송하다고 사죄했습니다. 하지만 대표는 전혀 듣지 않고 “그러니까 일을 왜 그딴 식으로 했어?”라고 화만 냈습니다. 그런데 팀장이 “제 책임입니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라고 책임을 인정하자, 대표의 화는 거짓말처럼 누그러졌습니다. 이렇게 책임을 인정해야 마음이 풀어지는 유형의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말보다 “제 책임입니다.”라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를 먼저 하는 게 좋습니다.
3 보상이 있는 사과
보상이 있어야 마음이 열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미안합니다.”라는 말보다는 “죄송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해드리면 좋을까요?”라고 말하는 게 더 낫습니다. 예를 들어 중요한 약속을 까먹었다면 “미안해. 내 잘못이야.”라고 사과하기보다는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대신 이렇게 하면 어때?”라고 물어야 상대가 마음이 풀립니다. 보상이 있는 사과를 좋아한다고 해서 큰 것을 보상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말로만 하는 사과보다는 직접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일 때 마음이 누그러지기 때문에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 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좋습니다.
4 재발을 방지하는 사과
재발을 방지하는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하다고 책임을 인정하고, 보상하겠다고 해도 마음이 잘 안 누그러집니다. 이들은 다만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벌어지길 원치 않을 뿐입니다. 그러니 재발하지 않도록 구체적인 계획을 말해 주는 게 좋습니다. 도저히 그 방법을 모르겠다면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할 방법을 좀 알려 줘.”라고 묻는 게 낫습니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게. 너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을게.”라는 모습을 보여 줘야만 마음의 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5 용서를 구하는 사과
이런 거 저런 거 다 떠나서 “날 용서해 줄래?”라고 사과의 주도권을 상대에게 넘겼을 때 마음이 풀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미안해.”라고 말하며 사과를 받아주기를 바라는 포지션보다는 “날 용서해 줄래?”라고 공을 상대에게 넘겼을 때, 그 위치 전환에 마음이 사르르 열리는 유형입니다. 문득 만화가 윤태호 씨를 인터뷰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완벽한 아빠이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빠라고 해서 신은 아니니까요. 다만 사소한 것이라도 잘못했을 땐 즉시 “아빠 용서해 줄래?”라고 솔직하게 말한답니다. 그러면 아이의 마음이 확 열린다고요. 어른이 아이에게, 갑이 을에게, 강자가 약자에게 “용서해 주세요.”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기에 더욱 진심으로 다가오는 게 아닐까요? Gary Chapman은 갈등을 겪을 때 다음의 질문을 활용하라고 귀띔합니다. “둘 다 사랑과 인정을 받는다고 느끼면서 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는 사과를 해도 우리가 주고 싶은 방식대로만 상대방에게 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다른 사과의 언어를 갖고 있다면? 상대는 실망하겠죠. 사람은 자신에게 진정으로 와 닿는 사과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니까요. 그래서 상대가 어떤 사과의 언어를 바라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거죠.
잠깐, 좀 쓰고 마무리해 볼까요? ^^
전 요즘 ‘자기 자비’에 관심이 많은데요. 우리가 살면서 타인에겐 사과할 때가 있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가 쉽지가 않은 것 같아요.
1. 나 자신에게 미안했던 일에 대해 써 봅니다. (후회되는 것들도 좋고요)
2. 그 미안했던, 후회되는 일에 대해 나 자신에게 어떤 유형의 사과를 전하겠어요?
(그때 힘들었던 나의 감정을 읽어주는 것도 좋고, 나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사과도 좋고, 보상을 해 주는 사과도 좋고, 혹은 앞으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좋고요.)
저는 스무 살의 저에게 사과를 해 봤습니다. 그때 저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거든요. 밥도 거의 안 해 먹고 아침 수업도 제대로 안 들었습니다. 그때 PC 통신에 빠져서 새벽 3시는 되어야 잤던 것 같아요. 요즘은 사람들에게 피부 좋다는 소리를 듣지만 그때는 여드름이 얼굴의 반이었습니다. 매일 인스턴트만 먹고 자주 굶으니 비염도 심했고요. 그래서 저는 그때의 저에게 “제대로 돌보지 못한 나를 용서해 줄래?”라고 전한 뒤 ‘이젠 너를 지켜줄게, 라며 재발을 방지하는 사과’를 전했습니다.
참, 나 자신에게 어떤 사과를 했는지, 써 보시고 주로 나는 어떤 방식의 사과 유형을 쓰는지 알아차려 보세요. 그리고 문득 사과하고 싶은 사람이 떠올랐다면 그 사람은 어떤 사과 유형을 좋아할지 탐색해 보는 것도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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