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통합성]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보완

 

한 남성이 있다고 해 보자.

그가 정상에 서서

마침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다는 성취감을 느낄 때

마음 한켠으로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초조한 기분이 든다면

그 부정적인 감정을 인격화해서

내면의 대화를 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는 세속적 에너지를 채우는 일에

생명력과 에너지를 소모하여

내면의 아니마(여성성)를 돌보지 않는다.

이런 남성 안에서 관심 받지 못하고 답답한 환경에서

지내는 그의 아니마는 당연히 침울해질 수밖에 없다.

 

만일 그러한 불안감이

그 자신의 영혼을 발견하라는

그 내면의 아니마의 부름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아니마는 그를 온전한 인격을 향해

가도록 이끄는 역할로 방향을 바꿀 것이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자식들을 잘 키워 독립시킨 한 여성이 있다.

그런데 만족은커녕 왠지 모르게

우울하고 마음이 허전하다.

 

이때 여성의 아니무스(남성성)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다.

여성의 아니무스는 그녀가 자신을 희생하면서

지금까지 이룬 것이 모두 헛되다고 속삭인다.

또한 그녀는 지배적이고 상투적인 논리를 펼치며

주변 사람들을 괴롭힌다.

 

여성이 이와 같은 부정적 아니무스의

지배에 들어가지 않는 길은

내부에 잠재된 아니무스의 억압된 힘을

이해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더 심술궂고

잔인한 아니무스의 지배에 갇혀 버릴 것이다.

 

남성은 아니마의 투사를 인식하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고

돌보며 적절히 표현할 때

우울하고 화가 나는 감정에서 헤어날 수 있다.

자신의 정서적인 측면을 의식하고 다룰 수 있다면

영혼의 생명력과 활기가 생기는 것이다.

 

여성도 아니무스의 공허함과 부정적 비판을

현명하게 잘 다루기 위해서는

자신이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주체적으로 사고하면서

유연하게 아니무스의 힘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부정적인 아니무스는

마치 융통성 없고 편협한 독불장군 같다.

아니무스가 개인적인 상황을 무시하고

쏟아내는 진부한 의견에

굴복하지 말고 이렇게 타일러보자.

 

“사실 내 입장은 이러이러하다.

이것은 나에게 아주 중요하다.

그러니 더 이상 나에게 반대하지 말기 바란다.”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우리 내면에서 긍정적으로

활동할 공간을 마련한다는 것은

 

남성의 경우

~해야 한다는 피상적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잠재된 아니마의 영혼에

귀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남성은 자신 내부에 존재하는

아니마를 통해 올라오는 감정적 시달림을

기꺼이 돌보고 아낌없는 사랑을 줄 때

그의 내부 아니마는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세계로 그를 이끈다.

 

아니무스에 사로잡힌 여자는

경직되고 냉정해 보이므로

사람들은 그녀를 조심스러워하고

멀리할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그녀 자신도 점점 더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여성은 자신 내부에 존재하는

아니무스와 싸움을 벌이며 조롱하기보다는

격려하고 믿어줄 필요가 있다.

그러할 때 아니무스는 가장 친한 벗이 되어

그녀 자신을 용기, 독립성, 진취성을 발휘할 수 있는

성장의 길로 진입할 수 있게 돕는다.

 

남성은 자신의 변덕스러운 아니마와

여성은 자신의 강압적인 아니무스와

긍정적 관계를 맺는다면

 

그들이 주는 영향력에 휩싸이지 않고

자신이 가진 잠재력과 가능성을 실현해 나가는

동반자적인 길을 발견할 수 있다.

 

 

_ Jung, C. G (1971).  Anima and Animus + 나의 관점에서 양극성 합일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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