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재구조] 삶을 새롭게 운명을 바꾸는 언어

삼각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다가, 오늘은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해요. 가족 역동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게 언어거든요.

 

저희 아버지는 말을 예쁘게 하십니다(세상에서 말 예쁘게 하는 사람 상위 5% 안에 든다고 저는 자신합니다). 그래서 저희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하면 좀 어이없게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머니가 주로 공격하면, 아버지는 유머로 승화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Gottman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부부 간 대화를 5분만 들어도 향후 6년 뒤 이혼여부를 예측할 수 있다.” 그가 이혼하는 부부들을 연구해 봤더니 서로 경멸의 언어를 쓰더란 거죠.

 

한쪽이 경멸의 언어를 쓰면, 다른 쪽도 경멸의 언어로 피드백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서로 경멸하는 언어를 주고받다가 이혼으로 간다는 거죠.

 

그런데 잘 사는 부부를 보니까 5:1의 비율로 대화의 밸런스를 맞추는 경향성이 높았습니다. 만약 상대에게 부정적 소리를 1번 했다면 5번의 긍정적 피드백을 줬다는 겁니다.

 

언어는 정말 중요합니다. 사실 자기 자신과 하는 내부 대화를 잘 분석해 보면 부정적인 경우가 꽤 많은데요.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부정적 생각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사실 뇌 입장에서는 개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건데요.

 

 

부정적 일을 자꾸 떠올려야, 무엇 때문에 위험해졌는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 어떤 사람이 내게 도움이 되거나 해가 되었는지, 향후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대응할 수 있게 하니까요.

 

뇌가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러한 반응을 만드는 건 참 고마운 일인데, 부정적 생각은 끝이 없어서 결국 긍정적 추진력을 앗아갑니다. 그래서 이럴 땐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와 글로 써 보라고 하는 겁니다. 내부의식을 외부로 빼면 객관화할 수 있거든요.

 

생각, 감정, 느낌은 내 뜻과는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것이지만 컨트롤하는 비법이 있기는 합니다. 호흡과 몸의 움직임 그리고 언어인데요.

 

언어가 뇌를 바꾼다는 연구는 꽤 많습니다. 우리가 긍정적인 단어만 들어도 걸음걸이가 가벼워지고, “지금 이 순간, 편안하고 안전하다.”라고 내부대화만 해도 정서적 안정감이 올라갔거든요. “나는 할 수 있어.” “우린 해낼 수 있다.” 이런 내부대화만 해도 목표달성률이 높아졌습니다.

 

몸에도 영향을 끼쳤는데요. "불볕더위, 여름, 작열하는 태양, 뜨거움"이란 단어만 인지해도 체내 온도가 올라갔고 “아이스크림, 얼음, 차가운, 으스스한”이란 단어만 인지해도, 체내 온도가 떨어졌습니다(Bargh, J. A, 1996).

 

언어를 잘 쓰면 인생이 바뀐다는 것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정이나 직장, 미디어, 주변 사람들로부터 듣는 언어는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경우가 많거든요. 우리가 주변 사람의 감정에도 전염되듯이 언어도 전염성이 있어서 영향 받기 쉽습니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자기 자신을 격려하는 내부대화를 자꾸 써야 합니다. 결국 자기 안에 있어야 외부로 나올 수 있거든요. 내부에서는 ‘1818’  하는데 외부로는 “고객님, 사랑합니다.” 하다가 자아분열이 일어나서 정신병리가 생기는 거죠.

 

하지만 내부에서 ‘그 어떤 상황, 순간이 와도 나는 나를 믿고, 사랑해.’라고 내부 대화하는 사람은 이미 내부적 배짱이 있기 때문에 균열이 생겨도 덜 흔들립니다.

 

 

가족역동에서 중요한 게 언어와 정서인데요. 언어와 정서도 대물림됩니다. 가족 내 불안은 침투성이 강해서 만성불안이 자녀에게 그대로 전달되는데, 결국 부모가 쓰는 언어도 자녀에게 이어집니다.

 

사실 한 개인이 형성되는 데는 양육자의 영향력이 크지만, 우리 뇌의 시냅스는 나이가 들어도 다시 연결되고 생성되는 신비함이 있듯이 내가 문제를 인지하고, 개선하기로 마음먹으면 변할 수 있다고 저는 믿거든요.

 

역기능적인 가족 때문에 괴롭다면 그것을 인지하고, 정리를 해야 불행한 유년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유년이 행복한 사람이 계속 행복하게 사는 건 누가 못하나요. 불행한 유년임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사는 게 더 멋진 거죠.

 

예전에 《좋은생각》 독자 중에 꼭 제 이름 앞으로 사연을 보내던 분이 있었는데요. 이 분이 글도 빼어나게 잘 썼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간 뒤에 어머니가 재가했는데,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엄마는 묵인하고(이런 사례 많습니다. 먹고 살 방도가 없어 침묵하는 거죠.) 이 분이 9세부터 당하다가 16세에 도저히 못 참고 가출합니다.

 

저라도 이런 상황에선 가출했을 것 같습니다. 16세면 많이 참은 거죠. 저라면 이미 그 전에 가출했을 것 같네요.

 

《탄이초(歎異抄)》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현재의 자신은 그것을 하지 않아도 될 상황에 놓여 있었을 뿐, 그러한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그럴 수 있는 씨앗을 감추고 있다.”

 

 

집 나온 청소년 아이들 보면 가출 패밀리가 이렇게 형성됩니다.

 

상처받은 아이들끼리 모이면 서로 위로해 주고 공감해 줄 것 같지만, 내 상처가 뜨거우면 사실 타인을 돌볼 마음의 공간이 없죠. 그리고 13세-18세 미성숙한 아이들이 모여봤자 무얼하겠어요.

 

초졸이 전부인 아이에게 세상은 냉혹하죠. 제게 사연을 보낸 그 분도 16세부터 유흥업소를 전전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자기 전에 하루에 한 장씩 《좋은생각》을 읽으며 자신에게 일기를 쓰기 시작합니다. “세상 사람이 다 나를 버려도, 나는 나를 안 버리고 지킨다. 나는 나를 사랑해 줄 거다.” 이런 슬로건을 항상 독자 편지 밑에 쓰곤 했는데요.

 

이후에 네일아트 기술을 배워서 검정고시도 준비하고, 방통대에 진학한 뒤엔 서울의 모 대학에 편입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분이 앞으로 잘살 것 같습니다. 이미 자신의 삶을 자기 격려의 언어로 다시 쓸 줄 아니까요.

 

 

제가 《좋은생각》 발행인을 존경하는 부분은 편집부에 항상 “시장에서 꼬막 파는 할머니도 쉽게 읽을 수 있게, 무조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써라. 언어가 사람을 살린다.”란 철학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초의 《좋은생각》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던 여공 분들을 위해 탄생한 잡지거든요.

 

저 역시 요즘 책 쓸 때, 가급적 어려운 말은 싹 다 걷어내고 아주 쉽게 쓰려고 합니다. 피곤에 지친 사람들이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도 당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게요.

 

아무튼 말이죠. 내가 나 자신과 나누는 긍정적 언어는 개운법 1순위인데, 사실 뉴스만 봐도 부정적 언어에 잠식됩니다. 요즘 저는 괴로운 일이 생기면 이렇게 마인드 컨트롤합니다.

 

1. 내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해결 방안, 구체적 실천 방안 강구)

2. 개입할 수 없다면 스쳐 보내기

3. 그냥 스쳐 보내기에 가슴 아프다면, 당사자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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