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역동] 사랑하는 만큼, 쉽지 않은 가족 1

예전에 한 기자가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에게 가족의 의미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해요.

 

“가족이요? 글쎄요. 누가 보지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가 아닐까요.”

 

말은 저렇게 해도 그에게 가족이란 더는 안 보고 싶을 정도로 미워도, 사랑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관계라는 것을 냉소 반 농담 반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어제 오랜만에 가족상담하는 선생님이랑 통화하면서

 

“저는 왜 다른 사람 이야기는 잘 들어주면서, 가족 이야긴 못 듣는지 모르겠다.”라고 한탄하자 그 분이 이런 현명한 답을 하는 게 아니겠어요.

 

“뭐긴 뭐야. 서로 빚진 게 있으니, 받으려고만 하기 때문이지. 그냥 이 두 가지 버전의 변주곡이라고 보면 돼. 첫째.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니가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둘째. ‘부모라면, 배우자라면, 형제자매라면 당연히 나의 부족한 모습도 감싸주어야 하는 게 아니야?’ 이런 기대가 있으니 실망하는 거고. 가족은 무의식적으로 서로에게 받을 게 있다고 생각하는 빚투 의식이 잠재되어 있는 거지.”

 

빚투 의식이란 말에 뻥 터져서 한참 웃었는데요.

 

Murray Bowen은 가족 관계 역동에 대해 기막힌 통찰력을 발휘한 분인데요. 이 분은 가족 관계를 하나의 체계로 보고, 그 안에서 움직여지는 흐름을 섬세한 역동으로 풀이합니다.

 

이 분이 조현병 아이를 둔 가정을 대상으로 연구를 오래 했는데, 결국 한 가정의 아이 증상은 그 아이 문제만이 아니라 그 가족이 가진 문제적 증상의 발현으로 본 거죠.

 

주목할 만한 점은 아이의 증상이 호전되면 엄마가 아프다든지 다른 가족 구성원이 그 아이의 문제를 받아 증상으로 드러나는 케이스가 많았는데요.

 

결국 가족 문제는 모빌처럼 이어져 있기 때문에 Murray Bowen의 통찰처럼 건강한 자기 분화(differentiation of self)가 뒷받침되어야 변화의 실마리가 잡힌다는 거죠.

 

자기 분화란 독립된 한 개인으로서 갖는 정서적 성숙성을 의미하는데요

 

자기 분화가 되어 있지 않고 서로 융합되어 있는 가족 같은 경우, 너=나, 이기 때문에 서로 숨 쉴 공간이 없습니다.

 

반대로 자기 분화가 아예 정서적 단절로 이루어져 있다면, 무늬만 가족이지 하루 종일 대화 한 번 하지 않거나 서로 차단되어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요즘 이슈가 된 한 개그맨  사례를 보면 가족이 융합된 케이스로 보이는데요. 이 분이 30여 년 간 일구어 온 재산이 모두 가족들 명의로 넘어간 걸 뒤늦게 알았다는데,

 

사람들 반응을 죽 보니까 “자식을 돈으로 봤다.” “저게 부모냐. 형이냐. 이제 조카까지 사람을 호구로 알았다.” 등등 많은 비난의 댓글이 쏟아졌습니다.

 

이런 케이스를 보면 가족들에게 그의 존재는 한 개체로 독립된 존재가 아닌, 그저 자신들의 분신(너=나)인 셈입니다. 사실 자수성가해서 가족들을 다 책임지고 있는 경우, 이런 융합된 사례는 비일비재합니다.

 

사실 가족들 입장에선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아들, 내 동생, 내 도련님, 우리 삼촌인데 뭐 어때? 이런 반응인 게 융합된 가족에서 나타나는 패턴인데요.

 

그의 입장에선 아마 오랜 시간 가족과 융합되었기 때문에 “나도 내 삶을 살고 싶다.”라는 욕망을 느껴도 왠지 그러면 죄책감이 든다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무의식적 책임감 때문에 모든 걸 떠안고 살았을 확률이 높죠.

 

 

사실 아무리 한 개인이 성숙하더라도, 가족은 체계로 엮여 있기 때문에 다른 가족 구성원의 자기 분화 수준이 낮으면 융합 관계가 풀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족 관계 역동은 사회 생활하면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는데요. 잘 분화된 가정에서 성장한 개인은 자기 자율성이 확립되어 있어서 타인과 안정적인 관계를 맺으면서도 타인이 자기 경계를 침범해 오면 적절하게 방어하며 잘 풀어갑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감정 반사적으로 화를 내며 상대를 지나치게 공격하거나 아니면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할 때도 그렇지 못하고 가해자에게 의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Bowen에 따르면 자기 분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경우, 타인의 경계 속으로 훅 들어가 지나치게 영향을 주려고 한다든지, 반대로 타인을 우상화하여 아버지 어머니처럼 의지한다는 거죠. 반면 자기 분화가 잘 이루어져 있다면 자신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나의 경계를 잘 확보하면서도)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남녀가 결혼으로 맺어지는 경우를 보면 자기 분화 수준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가족과 융합되어 모든 걸 다 떠안은 사람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의지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반대로 자신과 비슷한 부류를 만나 결혼생활에서 주도권 싸움을 격렬하게 벌인다든지

 

자기 분화가 미숙해서 의지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을 강하게 제어하는 사람을 만나서 불화가 시작되거나, 비슷한 부류를 만나서 너는 왜 나한테 의지하려고만 하냐고 서로 책임을 회피한다는 거죠.

 

그리고 역기능적 가족 관계 역동에서 피할 수 없는 게, 삼각관계(triangles) 패턴인데요. 남편이나 아내에게 실망한 사람이 그 문제를 배우자와 해결하지 않고 자녀에게 호소하며 푸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부모의 정서를 스펀지처럼 흡수한 자녀는 불안의 대물림을 받게 되는 거죠.

 

이 이야기를 하려면 길어지니, 다음에 이어서 써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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