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지능에 대해 쓰려 했는데, 갑자기 쓰고 싶은 이야기가 떠올라서 오늘은 청크(chunk) 업-다운에 대해 나눠볼까 해요.
예전에 주역 선생님이 일이 잘 안 풀릴 땐 “한번 반대로 해 봐라.”라고 했는데요. 예를 들어 오른쪽으로만 가르마를 타 왔다면, 한번 왼쪽으로 타 본다든지, 주 고객이 여성이었다면 남성으로 돌려본다든지
소수와만 친밀감을 쌓아왔다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본다든지, 반대로 피상적이고 비즈니스적인 관계만 맺어 왔다면 친밀한 소수와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 본다든지,
왼쪽 길로만 다녔다면 오른쪽 길로도 한번 가 본다든지, 맨날 나대기만 했다면 좀 조용하게 스스로를 돌아본다든지, 항상 조용히 있었다면 여러 모임에 가입해 활발하게 떠들어본다든지,
물건을 팔아야 한다면 물건을 사는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든지, 새 에어컨을 개발해야 한다면 따뜻한 온풍기에 대해 탐구해 본다든지,
위로 올라가는 건축물을 설계해야 한다면 지하에 있는 건축물에 대해 생각해 본다든지, 반항아적인 이미지의 배역만 맡아 왔다면 스윗한 역을 해 본다든지
실제로 인터뷰이 말들을 떠올려 보면 이렇게 역발상으로 변화의 물꼬를 만든 분들이 꽤 됩니다.
어제 논문을 보니까, 보통 대화를 나눌 때 좌뇌형은 상대방과 자신의 차이점에 먼저 초점을 맞추고, 우뇌형은 상대와 자신 사이의 공통점(가깝게 느끼게 하는) 요소에 집중하는 경향이 높더라고요.
저는 우뇌형에 가까워서 생각을 할 때 이미지로 먼저 떠올리는 편이고 상대를 볼 때 비슷한 부분이 먼저 쏙 들어오거든요. 그래서 나와 접점이 없는 경우엔 친밀한 관계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죠.
그런데 사회학자 Mark Granovetter는 인간관계에서 Weak Tie(느슨하고 약한 관계, 나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삶의 변곡점에서 Weak Tie로부터 많은 영감과 기회가 온다는 거죠.
그러고 보면 저 역시 정보의 중요한 연결망이 된 분들은 다른 분야에 있거나 나와는 다른 관심사나 생각을 가진 분들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와는 좀 달라도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듣고, 배울 만한 점은 없는지 체크해 보는 거죠.
아무튼 서두가 길었지만, 상담학적으로 보면 생각의 전환을 만드는 기법 중에 청크업-다운(chunk up-down)이 있는데요.
청크란 있는 그대로 풀이하자면 ‘덩어리’죠. 청크 업은 한마디로 큰 관점, 상위 관점(가치관)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겁니다. 어떤 일에 있어서 갈피가 안 잡힐 때, “도대체 나는 왜 이 일을 하지?”로 청크-업하면 꼬인 생각이 풀릴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가 목표라고 해 봐요. 이때 청크 업(chunk up) 하면 “건강한 생활”, “자기 돌봄” 등이 될 수 있겠죠.
반대로 청크-다운하면 “낮에 햇살 받으며 걷기” “잘 먹고, 자기 전에 감사한 일을 떠올려 보기”, “하루의 시작은 전날 밤이라고 생각하기” 등 세부적으로 상황을 쪼개서 실천 가능한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청크 업-다운은 역으로 활용해도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이렇게 먹으면서 왜 살지?” 이런 상위 관념적인 물음이 밀려오면 반대로 청크 다운(chunk down)해 봅니다. 더 맛있는 메뉴를 먹고, 요리법을 배워보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으며 대화해 봅니다. 그러다 보면 기분이 나아져서 그러한 관념적인 생각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습니다.
반대로 청크 다운된 생각들, 예를 들어 “검은 구두, 갈색 구두, 흰 구두 중에 뭘 사지?” 이런 지엽적인 선택에 놓여서 고민하고 있으면 반대로 청크-업해 봅니다. “나는 왜 이 구두를 사려고 하는 거지?” 그러다 보면 색깔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죠. 발이 편하고 내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잘 동행할 수 있는 걸 고르게 됩니다.
청크-업의 이점은 지엽적인 상황에 매몰된 나에게서 벗어나 전체적인 그림을 보게 해 주고, 청크-다운의 이점은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한 생각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하게 함으로써 현실화하고, 일상의 탄력을 높일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이런 방법도 우울하거나 번아웃된 상황에서는 그다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이럴 땐 “안전지대 넓히기”를 먼저 하고, 청크 업-다운을 해 보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한테 받은 상처가 있어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면, 믿을 수 있는 친구를 만나본다든지, 말이 잘 통하는 사람과 대화해 본다든지, 이해관계 없이도 맛있게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사람을 먼저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봅니다. 이렇게 안전지대 속에서 사람을 만나는 영역을 조금씩 조금씩 넓혀 보는 거죠.
그리고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면 일단 내가 잘하는 것, 하기에 좀 수월한 것부터 해 봅니다. 어릴 때 내가 잘하던 것, 누군가에게 칭찬이라도 한 번 받아본 것, 재밌는 것, 그래도 남들보다 0.5만큼이라도 더 잘하는 걸 해 보는 거죠. 슬슬 마음의 가속도가 붙으면 조금씩 다른 일도 해 보는 거죠.
저는 요즘 내부의 비판자(critic)가 자꾸 말을 걸어오면 거꾸로 내면의 몽상가(dreamer)를 불러오는데요. 이건 다음에 기회가 될 때 이야기 나눠 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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