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날이 있는 것 같아요. 묵혀 둔 공간을 청소 한다든지, 옷 정리를 한다든지, 쌓아둔 것들을 버린다든지요.
오늘은 구석에 두었던 상담 사례집을 죽 훑어보게 되었는데, 사례들이 정말 각양각색이더라고요. 하지만 총 3개의 카테고리로 압축되었는데요.
1. 건강 문제 2. 인간관계 문제 3. 돈 문제. 그 어떤 이슈도 이 세 가지 범주를 벗어나 있지는 않더라고요.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이 세 가지 범주는 따로인 것 같아도 하나로 연결된 유기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일단 몸이 아프면 인간관계가 어그러집니다. 몸은 정신과 연결되어 있는데, 몸이 아프면 마음이 불편하고, 마음이 불편하니 주변 사람들과 갈등도 생깁니다. 그런데 돈이란 것도 보면 결국 사람을 타고 오잖아요. 사람들과 관계가 안 좋은데, 돈이 잘 벌릴 수가 없죠. 취직, 승진, 영업, 인기, 대중, 고객, 계약, 거래 다 사람을 타고 오니까요.
이 3가지 범주는 찰떡 같은 순환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어떤 것이 먼저이든 연쇄적 순환이 계속 일어납니다. 인간관계가 안 좋아도 건강이 안 좋아지고 이는 경제적 문제로 이어지고, 경제적 문제가 악화되면 인간관계에 갈등이 생기고, 건강이 안 좋아지고~ 니체가 통찰한 영원회귀의 고리가 빙빙 이어지는 거죠.
암튼 지난번에 (클릭☞)개운법 관련해서 글을 쓰다가 말았는데요. 오늘은 이런 순환 고리를 재맥락화하는 연금술(?)에 대해 써 보고 싶어졌습니다.
저도 참 잘 안 되어서 어렵지만, 의식하고 있는 것과 이런 부분을 아예 모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4) 사물의 성질은 그것이 가진 자성(資性)보다 관계성 안에서 드러난다.
미치오 카쿠라는 물리학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죠. “세상은 물결처럼 퍼져 나가는 에너지 덩어리다. 그리고 생명의 성질은 그것이 가진 자성(성질)보다 관계성 안에서 드러난다.”고요.
음, 그러니까 평소 봉사도 열심히 하고, 타인을 돕는 사람도 자기 가족을 죽인 살인자를 보면 똑같이 죽이고 싶은 원한이 올라옵니다. 생명의 성질은 그 자체보다도 상대와의 관계성 안에서 벌어지는 즉흥극 같은 부분이 있다는 거죠.
니체는 이런 부분에 대해 ‘이시적 상호의존성’으로 해석합니다. 이시적 상호의존성이란 모든 것들이 상호의존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상대의 미세한 변화로 사건의 출현이 달라지는 것을 뜻합니다. 세상에 고정되어 있는 게 없고, 관계성에 따라서 그때그때 올라오고 사라진다는 건데요.
그래서 니체는 고통이나 슬픔을 본원적 소유물로 여기지 말고, 타자성의 보전(고통은 외부와의 조건 속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 나의 본원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두기를 권합니다.
물에 한 번 빠진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물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 물에 빠진 사건을 자신의 본원적 소유물로 계속 지니고 있기 때문인 거죠.
만약 그러한 물에의 두려움을 타자성의 보전으로 남겨둔다면 ‘이젠 나의 신체 상태, 나의 능력이 성장하고 변화했다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조건 아래서 물과의 만남에는 더 이상 고통이 동반되지 않음’의 태도를 갖게 됩니다.
저는 취재를 하면서 만난 분들, 그리고 내담자 분들을 만나면서 개운법의 차이란 이런 미묘한 지점에 있다는 걸 느끼는데요.
똑같이 안 좋은 상황을 만나더라도 A는 그것을 나와 분리해 “그땐 그랬지만, 이러한 점을 배웠고, 나는 더 단단해졌어.”라는 의미 포착이 탁월했지만, B는 “그것은 나의 불운이며, 앞으로도 내 발목을 잡을 것이며, 다른 것도 망칠 것.”이라는 인지 구조를 가지고 있더란 거죠.
저는 사람도 하나의 에너지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원리는 삶의 전반에 적용되는 것 같아요. 음, 쉽게 이야기해서 C를 만났는데 철수는 C의 장점을 보고, C로 인해 얻은 본인의 긍정적 지점을 탐색해 보고 그러한 관계성을 발전시킨다면 철수에게 C는 귀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C를 만났는데 C의 단점만 보이고, C로 인해 불행해질 나의 지점만을 탐색해 보고 그러한 관계성을 악화시킨다면 나에게 C는 악연일 수도 있습니다.(물론 C가 극단적인 사이코패스라면 철수에게도 나에게도 악연이겠지만요.)
제가 좋아하는 아가다 수녀님 말씀에 의하면 사이코패스도 사랑으로 키운 사례에서는 기적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 하더라고요. 연구 결과. 상담의 영향력이 없는 경우가 사이코패스인데(예를 들어 사이코패스면 이미 유아 때부터 공격성과 잔인성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키우던 고슴도치를 잔인하게 죽이더라도 “아가. 그러지 마. 그러면 고슴도치가 불쌍하잖아.”라고 하면 못 알아듣는 거죠. 연민이라는 감정을 못 느끼니까요.
대신 “이 고슴도치는 희귀동물이라 개체수가 한정되어 있어 죽이면 안 돼.”라고 논리적으로 이야기 해 줘야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무튼 이 아이가 사랑이 많은 한 가정에 입양되었는데, 지금은 외과의사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며 살고 있다고 해요.
다른 의사들은 잔인해서 못하는 온몸이 갈기갈기 찢긴 수술도 아주 차분하고 능숙하게 잘 해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고요. 그런데 왜 의사가 되었느냐고 물으니 “돈을 많이 벌고 싶었고, 나는 날 키워준 부모를 사랑한다. 보답하고 싶었다.”라고 답했다고 해요. 보통 사이코패스에겐 ‘사랑’이란 감정이 없는데 그러한 단어를 썼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놀라운 피드백이었다고요.
그만큼 양부모가 사랑으로 키웠기에 사이코패스라는 자성도 긍정적 방향으로 발현된 거죠.
아무튼 사랑은 에너지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힘이 있는 파동을 가지고 있어서 분열된 미립자를 이어주는 신비한 영적 파워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왜 그렇잖아요. 누가 자기를 싫어하면 굳이 그 사람이 “나 너 싫어.” 하지 않아도 느껴집니다. 그리고 날 좋아하면 “나 너 좋아해.” 하지 않아도 그 좋음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재밌는 게 미립자는 생명체의 속마음을 실제로 읽는다고 해요.
Fritz-Albert Popp 박사가 최첨단 빛 촬영장치(GDV)를 통해 식물을 관찰했는데요. “잎사귀를 하나 떼서 불 붙여 볼까?”라는 생각을 품고 특정 식물을 쳐다보니까 그 식물의 감지기 그래프가 불안하게 요동쳤습니다.
분노, 저주, 슬픔, 사랑, 기쁨 등의 감정을 품고 박사는 비슷한 실험을 계속했는데요. 식물들은 그 감정을 정확히 읽어냈다고 해요.
생명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에도 미립자의 속성이 있어서 그 자체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으로 대하면 그것 역시 그 마음을 읽는다는 거죠. 그래서 자성을 뛰어넘어 나와의 관계성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가집니다.
영업왕 분들 중에 한 분이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이 분이 판매실적도 놀라울 만큼 좋았지만, 봉사 한 번 안 하는 병원장 분들을 설득해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돕는 커뮤니티를 만들었는데요.
사람 안에는 누구나 선한 면과 악랄한 면이 있는데 그 사람 안에 선한 면을 이끌어 내는 게 내 영업 비결이다, 라고요.
저는 요즘 재미삼아 이 관계성의 사랑 원리를 아주 소소한 데 적용해 보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제가 식탁 의자에 자꾸 부딪혀서 하루는 이렇게 말해 봤어요. “의자야. 너도 평생 여기에 갇혀 있으니까 답답하지? 답답하게 여기 둬서 미안해. 우리 잘 지내보자. 사랑해.”
신기하게도 이후에 거의 부딪힌 적이 없어요. 한 번 부딪혔는데 예전처럼 화가 나진 않더라고요.
저는 모든 생명이 이러한 관계성 안에서 벌어지는 파동 속에 놓여져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러한 원리를 터득하는 게 이 만족 없는 현상계에서(에고는 끊임없이 갈구하고 목말라 하므로) 개운하는 연금술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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