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화] 전체를 만난 게 아니니까 (1)



요 근래 불붙은 미투 운동을 보면서 ‘언젠가 쌓인 것은 터진다.’라는 걸 여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줄줄이 터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건너건너 들어온 이름들이고, 아직 수면 밑에 있어서 그렇지 어디선가 떨고 있을 분들도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일각에서는 미투에 대해 남-녀의 대결구조로 바라보는데, 저는 미셸 푸코가 성을 권력의 문제로 보았듯이 이것은 권력의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분은 여성 쪽에서도 얻을 게 있으니까, 본인이 ‘당해준 것’이 아니냐? 라는 물음을 갖는데, 차라리 “내가 얻을 게 있으니 너한테 당해 줄게. 대신 나는 너의 권력을 누릴 만큼 누려야지”라는 마인드가 있었다면 당한 뒤에 공황장애에 시달리거나 우울증에 빠지진 않죠. 



“내 삶의 주인은 나다! 내가 너를 이용하는 거다.”라는 주체성이라도 있었다면, 남들이야 당했다고 하든 말든 내 입장에서는 내가 선택하고 책임진 것이므로 자기비하로 빠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가깝기 때문에 자기혐오에 빠지고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위기 상담 세미나 때 성폭력 사례 연구하면서 “딸 키우기 무섭다.”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여실히 느끼게 됩니다. 또한 군 상담 시간에 군대에서 동성 상관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 당하는 병장 사례를 보면서 분노했던 게, 이것 역시 갑-을 관계의 갑질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여실히 느꼈기 때문이죠.



대학 때 아버지가 대기업을 명퇴하시고 주식으로 억을 날리면서(아빠도 이 글을 보실 텐데, 아빠 미안.), “아빠, 나 만 원만!” 하기가 미안해지면서 처음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그것도 운이 좋아 시작한 일이 학생기자 일인데, 물론 좋은 분들도 꽤 많이 만났지만 간혹 사회의 소위 앨리트라고 하는 분들이 이상한 방식으로 접근해 올 때면, 이십대 초반의 어린 나이었던 저는 놀라고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몇 번 겪다 보니까 내성이 생겨서 ㅎㅎ “지금 뭐라고 하셨죠? 말씀 함부로 하지 마세요. 제가 녹취하고 있는데 이거 증거가 되는 거 아세요? 사모님한테 보내드려야겠네요.”라고 눈 똑바로 뜨면서 이야기하면 슬금슬금 도망가더군요 -_-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얻게 된 깨달음은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가 어떠하든 맨 얼굴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왜 성적으로 기이하게 구부러졌는가? 그런 의문을 요즘 갖게 되는데요, 소위 말하는 일진 학생을 상담하는 한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한 일진 남학생이 있는데, 걔는 좋아하는 여자애가 따로 있고, 걔한테는 말도 못 걸고. 그런데 성폭행을 하는 여자애는 따로 또 있더라. 한마디로 개체 통합이 안 되는 거지. 섹스를 = 포르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랑은 저 멀리 다른 영역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고.”



미셀 푸코는 17세기만 해도 성이라는 것은 우리의 얼굴이나 손발처럼 통합적인 자연스러움에 가까운 영역이었는데,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성은, 신체의 부분과는 다른 것으로(더럽고 추악한 것으로) 고립되어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을 아끼게 되고, 귀하게 여기게 되고 그 사람이 다치는 걸 원치 않습니다. 남녀의 구별을 떠나서 말이죠. 하지만 그 사람을 부분적 존재-도구적 존재로 여기게 되면, 상대가 어떠한 식으로 고통 받든 말든 자기 욕망 채우기에 급급해서 막 대하는 거죠. 



센터에 이혼 위기까지 온 부부들을 보면, 나름의 속사정이야 다양하지만, 공통적인 점이 ‘서로를 단지 도구적 존재’로 여기고 있을 뿐이라는 거죠. 부인은 남편을 ATM 기기쯤으로 여기거나, 남편은 부인을 밥 차려 주는 애들 엄마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 무시하는 식으로요.



처음에는 사랑해서 결혼했을 텐데, 상대를 왜 그렇게 축소해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요? 여러 갈등으로 참고 참다가 형성된 방어 기제가 “상대의 존재를 접고 또 접어서” 어떤 ‘도구적 칸막이 안으로 밀어 넣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이었을까요?



제 논문 주제가 ‘개념화된 자기’의 해체인데요. 상대뿐만 아니라, 나 자신마저도 부분적으로 고착화하여 받아들이게 되면, 그리하여 어느 날 그 부분이 깨져 버리면, 존재(Being) 자체가 사라지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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