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합리적 신념] 잠깐 마음 멈추기 2



지난번에 엘리스(Albert Ellis) 박사가 말하는 (클릭☞) 비합리적 신념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지인이 요즘 제 블로그를 열혈 구독하고 있는데 남을 판단하여 처단하고 싶은 마음 속에는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미해결 과제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라는 부분이 이해가 잘 안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좀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주면 좋겠다고 해서 덧붙여 써 봅니다. 


음, 그러니까 상대가 법의 저촉을 받을 만큼 잘못한 건 아니지만, 왠지 그 사람의 어떤 행동이 나에게는 강렬한 불쾌함으로 확 올라와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때가 있다는 거죠. 이때 자신이 왜 그 부분에 유독 예민한지 살펴봐야 하는데요.


예를 들어서 저는 동식물한테 함부로 하는 사람을 보면(학대 수준이 아님에도) 강렬한 분노와 함께 처단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옵니다.


제가 대학 때 한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하루는 강촌으로 워크샵을 갔습니다. 풀숲에서 고기를 구워먹는데, 부장이 메뚜기 한 마리를 잡아서 다리를 떼더니 메뚜기 입에 넣는 겁니다. 놀라운 건 메뚜기가 자기 다리를 우적우적 먹더라고요. 옆에 앉은 사람들은 막 소리를 지르면서 징그럽다고 야유를 퍼붓더니, 부장이 메뚜기를 다시 놓아주자 깔깔거리면서 고기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더는 밥을 먹지 못하고 그 부장에게 강렬한 분노를 느꼈습니다. 저는 부장에게 “메뚜기 괴롭히면 부장님은 기분이 좋아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나 어릴 땐 말이야. 몸이 허약하면 메뚜기를 튀겨 먹기도 했어.”라며 껄껄 웃는 겁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부장은 메뚜기에게 가혹한 장난을 치기는 했지만, 일도 시원시원하게 잘 했고 사람들한테는 호탕하게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부장을 내내 속으로 미워했습니다. 나중에야 제 안에는 미해결과제가 있었기 때문에 유독 그 부장을 미워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제가 어릴 때 시골 친척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요. 복날이라 개를 잡는다고 타이어에 매달아 놓고 때리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때 저는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대처할 수 없었습니다. 더 비참했던 건 개가 끈이 풀려서 탈출했는데요. 주인이 다시 부르자, 바보 같이 다시 주인한테 가서 타이어에 묶이는 겁니다. 그 순간 저는 어린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장이 그때 개 주인과 너무 닮았던 겁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어우 부장님. 메뚜기 불쌍하다. 그냥 놓아 줘요.”라고 말하곤 다시 즐겁게 어울렸는데, 저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 거죠. 부장 얼굴이 그 개 주인 얼굴과 겹쳐져서 그 부장에게 내내 강렬한 분노를 느꼈던 겁니다. 


그래서 남들에게는 괜찮은데, 나에게는 과하게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상황(저는 제주도에 가면 말이 자기 몸무게보다 과한 무거운 꽃마차를 끌고 사람들을 태우고 힘들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너무 속상한데요.–주인이 말을 학대하지 않고 적절하게 물도 먹이고 먹이를 주더라도-주인에게 화가 납니다.) 이럴 때 알아차리는 거죠. ‘아, 내가 어릴 때... 타이어에 묶인 개를 구해 주지 못해서 미안함과 죄책감을 갖고 있었구나... 그런데 그때는 어쩔 수 없었잖아. 네 탓이 아니야. 그리고 개를 잡아먹는 게 그때 시골 문화였으니까...’ 하고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다시 불러내서 꼬옥 안아주는 거죠.


한 직장 동료는 후배들한테는 참 잘 했는데요, 유독 선배들과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같은 이야기도 후배가 하면 수용하는데, 선배가 이야기하면 발끈하는 거죠. 나중에 보니까 원가족인 아버지와 매우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그의 무의식에는 나보다 윗사람은=아버지,로 느껴지는 거죠. 그래서 상사가 잔소리를 하면 아버지가 잔소리하는 것처럼 불 같은 분노가 올라오고, 자기보다 윗사람이 조언이라도 하면 “꼰대가 나를 억압하려고 하는 소리”로 들려서 마음이 영 불편해지는 겁니다. 그가 만약에 유독 윗사람하고 본인이 잘 안 맞는 이유가 ‘아버지에게 억압당했던 내면의 아이’ 때문이라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면 좀 더 마음이 편안해졌을 텐데요.


한번은 대학원 선생님이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자기 문제랑 얽혀 있는 내담자는 받으면 안 돼. 그게 윤리인 것 같아. 하루는 예쁘게 생긴 20대 아가씨가 왔는데, 알고 보니까 중년 남자와 내연의 관계더라. 가계도를 그려보니까 이 아가씨가 중년 남자한테 끌릴 수밖에 없는 상처를 가졌더라. 어렸을 때 예뻐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계모한테 학대받으면서 자랐는데, 어느 날 아버지 같은 중년 남자가 등장해서 엄청 잘해주는 거야. 그러니 흔들릴 수밖에. 든든한 버팀목에 대한 그리움을 채워주니까. 그런데 말이야. 나한테 미해결과제가 있으니까 더 이상은 상담을 진행하기가 힘들더라.”


이 선생님은 남편이 어린 여성과 불륜 관계를 맺어 헤어졌습니다. 무의식에는 그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내담자가 남편의 내연녀로, 그 중년남자가 남편으로 오버랩 되었기에 ‘자신을 비우고 객관적인 눈’으로는 더 이상 상담을 진행하기가 힘들었던 거죠. 


아이코, 엘리스 박사의 비합리적 신념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려고 했는데, 남을 판단하여 처단하고 싶은 마음 속에는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미해결 과제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글이 길어져 버렸네요. 


아무튼 말이죠. 남들에겐 괜찮은데 유독 나에게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내 안에 해결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그 부분을 알아차리기만 해도 치유가 시작된다는 걸 알아차리셨으면 좋겠네요. 


나머지 비합리적 신념에 대해서는 다음에 써 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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