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내 마음이 고통스러울 때



몇 년 전, 친구랑 야경을 내려다보며 밥을 먹는데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는 게 왜 이렇게 재미가 없지? 넌 그래도 취재하면 새로운 사람들이라도 만나잖아. 난 하루가 너무 똑같아서 재미가 없어. 회사, 집, 회사 집.” 


그때 저도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그래. 그냥 표면적인 만남 속에서 소비되는 느낌이야.”라고 말했는데요. 


며칠 뒤,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부모님이랑 남동생이 친척동생 결혼식에 갔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있다고요... 가족이 동시에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까 친구 마음이 지옥이었습니다. 


병문안을 가니까 친구가 핼쑥한 모습으로 넋을 잃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의 친구 모습이 잊혀지지 않더라고요. 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는 것조차 친구 가족에게는 고통이었습니다. 


가끔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해요. “그때 그랬잖아... 사는 게 재미없다고... 아빠 장례 치르면서 마음이 진짜 지옥 같더라... 엄마랑 동생은 아프고... 모든 걸 나 혼자 짊어지는 게 너무 무섭고 외로웠어... 그냥 퇴근하고 맥주 한잔 하며 영화 보던 일상이 너무 그립더라... 때론 아무 일 일어나지 않은 일상이 축복이었다는 걸 왜 몰랐을까...”


친구가 말하던 소중한 일상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요즘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 저희 집 강아지가 신부전증 3기 판정을 받아서.. 제 마음이 지옥이거든요. 요즘 제 일상은 강아지 신부전증에 대해 공부하기, 동물병원 출퇴근하기입니다. 노견이라서 언젠가는 닥칠 일이라고 여겼지만, 생각보다 빨리 이런 순간이 오니까 마음이 무너지더라고요. 


예전 같으면 고통에 대해서 일단 의식적으로 눌러두고, 마음 굳건하게 먹으려고 애쓰거나, 무기력하게 울면서 잠들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이런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고스란히 느끼고 있습니다. 


수용전념치료(ACT)에서는 고통에 대하여 빨리 해결하거나 없애려고 힘을 소진하기보다는, 고통을 삶의 동반자와 같음을 받아들입니다. 내 마음의 요동침을 받아들이되, 지금 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을 어떻게 잘할 수 있을까... 알아차리는 거죠.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훈련과 연습 없이 저절로 갖게 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고통을 충분히 느끼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을 때도 있거든요. 


하지만 이렇게 잘 안 되는 마음까지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내가 이 녀석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남은 시간들을 이 녀석과 잘 보낼 수 있을까?”에 마음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오늘은 퇴원해서 같이 있는데요. 처방 사료도 잘 먹고, 산책에 대한 의지도 있어서 방금 전에 동네도 한 바퀴 돌고 왔습니다. 내일부터는 매일매일 새벽에 30분이라도 함께 산책을 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이 녀석과 함께 더 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약 제때 먹이고, 산책 매일 하고, 좀 더 놀아주고, 많이 안아주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사랑을 주고 싶어요. 


이번 한 주는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온통 강아지한테만 집중했는데, 다음 주부터는 센터와 작업실도 나가고, 친구들이랑 계획된 짧은 여행도 떠날까 합니다. 가족들에게도 해피를 돌볼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주고 싶어요.


ACT에서는 내가 모든 것을 다 짊어지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교만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권합니다. 또한 심리적 고통으로 겪게 되는 죄책감과 자기비하와 싸우거나 논쟁하는 대신, 단지 알아차리기. 충분히 토닥여주고,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구체적으로 차근차근 해내기를 격려합니다. 


언젠가 제가 좋아하던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더라고요. “고통은 삶의 보석 반지야. 늘 끼고 있는 그 반지를 충분히 알아차리고 사랑해 준다면 삶을 빛나게 해 줄 거야.”


우리가 고통을 겪을 때 실재하는 고통보다 더 많이 체감하는 이유는 언어라는 상징을 사용하기 때문인데요. 사람은 자신의 마음속에 빠져서 ‘실재하지 않는 고통까지도 느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하고, 걱정하고, 분개하고, 예상하며, 두려워하죠. 이러한 마음의 작용을 애써 지우지 않고 받아들이면서도 “아, 내가 또 마음속에 빠져 있구나. 삶 속으로 돌아오자. 현재로 돌아오자.” 알아차리도록 스스로를 토닥여주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참 좋아했는데요. 요즘은 ‘더불어’라는 말이 좋습니다. 아프고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그것과 더불어 함께하되’ 그것이 말하는 방향이 아니라, 실현하고자 하는 삶을 위해 행동하는 것, 그것이 삶의 의지인 것 같아요. 나를 위해서, 그리고 당신을 위해서요.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 해피가 남은 시간 동안 행복하게 살다가 떠날 수 있게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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