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맛집] 얼큰한 국물이 생각날 땐 삼숙이 라면 + 나만의 기분 좋은 공간 앵커링 하기


제 첫 내담자는 사촌동생 친구였는데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녀석한테 좀 미안하기도 합니다. 대학원 과제 때문에 급하게 소개받아 만났는데요. 그때 은유를 활용한 상담을 배우고 있었는데, 외재화 기법을 너무 많이 써서 수박 겉핥기가 된 부분도 있습니다. 


(외재화 기법이란 가지고 있는 이슈를 직접적으로 말 안 하고, 은유적으로 무의식을 끄집어 내는 기법인데요. 예를 들어서 이 친구가 여자친구랑 헤어져서 슬픈 마음을  "검은 먼지 덩어리"라고 표현했는데, 그 덩어리를 털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물으니 "그래도 너랑 사귀면서 행복했던 적도 있었다.  고마워. 잘가. 안녕. 후~ 하고 불어주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주요 이슈는 실연이었지만, 사실 이 친구는 내면이 꽤 건강한 친구였습니다. 하루는 그러더라고요. "제가 작년 여름에 맥줏집에서 알바하는데, 어떤 새끼가  "너 필리핀에서 왔냐? 너네 엄마는 필리핀에서 수입해 왔냐?'라면서 실실 쪼개더라고요. 열 받아서 들고 있던 맥주병으로 치고 싶었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인생이 힘들어지는  괜찮다근데 싫어하는 인간 때문에 인생 망치지는 말자싫어하는 새끼 때문에 인생 싫어하진 말자."


"오, 너 멋있다. 이거 명대사인데메모해 될까?" 라며 제가 휴대전화에 받아 쓰니까, "네, 대신 맛있는 거 사 주세요."라고 해서 10회기 상담 마지막 날에 종로에 갔습니다. 그런데 먹고 싶다는 게 라면이더라고요. 






PC방에서 게임하다 해장하러 자주 가는 라면집이라고 해서, 별로 기대 안 했는데, 생각보다 라면맛이 괜찮았습니다. 


라면집 이름이  (클릭 ☞) 삼숙이라면 이었는데요. 공깃밥이 무료라 국물에 밥을 팍팍 말아 먹더라고요 ㅎㅎ




내부는 정말 소박한 분식집입니다. 혼밥하기 좋은 구조더라고요. 논문 쓰다가 갑자기 뇌에 과부하가 와서 대학원 샘들과 삼숙이 라면집에 다시 다녀왔는데요. 



다시 먹어도 얼큰한 맛이 살아 있어, 먹고 나니 든든해졌습니다. 첨엔 분식집 라면이 무슨 오천 원이나 할까? 싶었는데, 햄, 떡, 어묵, 만두, 계란 등 라면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꽤 실합니다. 이 집에 육수를 어떻게 내는지 모르겠지만 가쓰오부시 맛도 나고 표고버섯 맛도 나고 국물이 시원하더라고요. 마지막에 듬뿍 얹어내는 파채도 국물맛을 깔끔하게 잡아주는 것 같습니다.




작은 가게 내부에 올망졸망 깨알 같이 있는 피규어들이 귀엽더라고요. 정말 가게가 작아서 몇 그룹의 손님만 와도 내부가 꽉 찹니다. ㅎㅎ 



라면집 창 밖으로 좁은 골목길이 펼쳐져 있는데 , 라면을 먹고 있으니까 중국인 관광객들이 손을 흔들면서 지나가더라고요. ㅎㅎ 이쪽에서 보면 저쪽이 무대 같고, 저쪽에서 보면 이쪽이 무대처럼 보이겠죠. 밖에서 이렇게 사진을 찍으면 영화 세트장 같은 느낌도 납니다.




오랜만에 종로에 왔는데, 
그냥 가기 아쉬워서 차 한잔 마시기로 합니다.  (클릭 ☞) 반쥴 에 가려고 찾아보니 다른 곳으로 이전했더라고요. 인터넷으로 서치해서 다시 찾아갔습니다. 



그래도 내부 인테리어는 예전이랑 비슷하더라고요. 한쪽  전면이 주인장이 수집한 200-300여개의 커피 그라인더로 빼곡합니다. 곳곳엔 엔틱한 장식들이 가득하고요.






반쥴은 잠비아의 수도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해요. 1974년부터 종로 있었던 찻집이니까 꽤 오래 되었네요. 공간에도 나이테 같은 결이 있다면, 이 찻집도 그간 수많은 사람들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겠죠?





작년에 같이 여행갔던 사진들을 Y가 현상해 왔는데요, 역시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은 논문 쓰느라 지쳐 있지만, 이땐 다들 싱그럽네요.



반쥴에선 허브차 종류는 직접 시향을 하고 주문을   있는데요. 저는 밀크티를 주문했습니다. 이 집 밀크티는 달달하면서 숲향(?)이 가득해서 좋아요. 전 밀크티만 마시면 행복해집니다. 


예전엔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밀크티를 한 잔 마시면서 영화 한 편을 보곤 했거든요. 그땐 시간을 물 쓰듯 써서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재밌는 연구를 봤는데요. 실제로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 꼴보기 싫다고 하면 시력이 떨어지는 게 그래프로 나와 있더라고요. 그런데 편안한 공간, 멋진 경치를 보면 일시적으로 시력이 올라가고요. 정말 듣기 싫다고 생각하면 귀에 염증이 생긴 사례도 있던데, 이쪽 계통은 아직 조심스러운 게 연구가 계속되는 중이라 확증하긴 어렵지만, 정신과 육체는 분명 소통하고 있고, 무엇보다 우리 신체는 기억을 담고 있다는 겁니다.


 NLP를 공부하다 보면 우리 기억은 신체뿐만아니라공간에도 앵커링되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잠깐 눈을 감고 



나에게 긍정적인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을 떠올려 보세요.



부정적인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공간도 떠올려보세요. 



예를 들어 저는 대학로에만 가면 20대로 돌아간  같습니다그때 주로 대학로에서 친구들이랑 놀았거든요. 그래서 대학로는 노는 공간으로 앵커링(무의식적으로 닻 내리기, 연결고리) 거죠...



홍대에 가면 다니던 잡지사가 있어서 뭔가 일하러 가는 기분이 듭니다... 출퇴근하던 내가 떠올라서겠죠...



요즘 제가 강아지에게 기분 좋은 앵커링 자꾸 만들어 주려고 하는데요... 얘가 산책길에 너럭바위를 참 좋아합니다... 거기서 제가 주로 간식을 주기 때문인데요...  ㅎㅎ 



나만의 기분 좋은 앵커링을 요소 요소 만들어 두는 건 작은 기쁨이 되는 것 같아요. 요즘 화엄경에 빠져 있는데... 읽다 보면 결국 얼마나 내 삶에 많은 소소한 완충 장치(기분 좋은 요소)를 많이 만들어 놓는가,가 영적인 활기에 꽤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게 또 삶의 생기로 이어지고요.


그러니 아주 작고 소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들을 앵커링해 두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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