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리록을 통해 알게 된 아이슬란드 록 밴드 시규어 로스(Sigur Rós). 요즘 오가며 시규어 로스를 듣고 있는데요. 마치 작은 서랍을 열면 광활한 우주가 펼쳐지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꽤 유명한 그룹인데 저는 잘 몰랐네요. 보니까 예전에도 내한을 꾸준히 한 모양입니다.
보컬 욘시는 오른눈이 실명한 채로 태어났다고 해요. 첼로활을 비벼서 기타를 연주하는 점이 특이하네요.
저는 음악을 들을 때 가사보다는 곡이 먼저 들리는 편인데요. 간혹 곡의 느낌은 모노톤인데 가사는 파스텔 느낌이 나거나, 반대로 곡은 화사한데 가사에 습기가 많으면 뭔가 언밸런스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시규어 로스는 '희망어'로 노래한다고 해요.
희망어는 보컬 욘시가 아이슬란드어와 영어를 섞어 만든 언어라고 해요. 곡에 맞게 뜻 없는 음절을 배열했다네요. 자신들만의 음악을 위해 하나의 언어를 창조한 셈이죠. 그래서일까요? 곡과 가사가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없습니다. 뭔가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듯 자연스럽게 귀에 걸립니다.
시규어 로스는 지난 2007년 '헤이마(Heima;집으로라는 뜻)'라는 영화를 만들면서 폐쇄된 어촌, 동네 마을 회관, 깎아지른 계곡, 미국 기업의 댐 반대 시위 현장 등 다양한 곳에서 공연을 했다네요. 주민이 2명밖에 없는 오지 마을에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는데... 그 2명의 주민이 왜 이렇게 부럽죠 ㅎㅎ
북유럽 아이슬란드의 광활한 대지를 떠올리게 하는 시규어 로스의 음악을 잠깐 들어볼까요?
이번 지산 벨리록에서 발견한 보석은! 바로 EDEN. 돗자리에 누워서 열심히 부채질을 하는데, 귀에 화악 걸리는 음악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EDEN의 <Gravity>였습니다. 요즘 저의 플레이 리스트에는 EDEN의 음악도 차지하고 있습니다.
EDEN의 음악은 차분하면서도 격정적인 느낌을 받았는데요.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모히토를 한잔 마시고 알딸딸한 상태로 들었던 아마존스(THE AMAZONS)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 열정적인 록을 듣는데, 왜 이렇게 졸린지 ㅎㅎ 졸음을 깰 겸 앞으로 걸어나가 보았습니다. 불타는 장면으로 무대를 꾸몄는데요.
어마무시한 열기에 잡아먹힐 것 같았습니다. ㅎㅎ 제 앞에 있던 어떤 분은 "아 짱이야! 스트레스 확 다 날아간다!"라며 엄청 방방 뛰던데... 문득 음악의 힘은 1차 감정을 건드려 주는 것에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잠시 해 봤습니다.
1차 감정은 예를 들어서 "오늘 있잖아, 회사에서 어쩌고저쩌고... " 하고 속상했던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는데 "니가 잘못했네!"라고 말하면 화가 나죠. 이때 '화'는 표면에 드러난 2차 감정입니다. 하지만 사실 1차 감정은 '서운함'이죠. 내 편을 들어주지 않고 "니가 잘못했네!"라고 하는 친구의 말이 서운한 겁니다. 이때 1차 감정은 묻혀 있어서 잘 안 드러나죠. 그런데 음악은 그런 1차 감정을 건드려주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벨리록은 그냥 산보하듯 여기저기 자유롭게 다니며 귀에 걸리는 대로 들었는데요. 흥에 겨워 열심히 소리 지르고 춤추는 사람들, 돗자리에 누워서 낮잠 자며 듣는 사람들 등등... 그다지 붐비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마침 때 맞춰 비도 조금씩 흩뿌려 주어서 촉촉하게(?) 잘 듣다 왔습니다.
해외 라인업이 약해서 사람들 수가 확 줄었다는데, 전 그냥 아는 뮤지션은 아는 대로, 모르는 뮤지션은 몰라서 새롭더라고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야외에서 음악을 들으며 편안하게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무대 장악력이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카리스마가 있다기보다는 ㅎㅎ 이상하게 귀여운 느낌을 받았는데요. <오리엔탈 디스코 특급>도 요즘 제 플레이리스트에 있습니다. 들으면 흥이 나죠. ^^
돗자리에 누워서 졸다가 친구가 "자우림 공연 보러 가야지."라고 해서 따라 나섰는데요. 아니, 저것은 <혁오>! 공연 전에 음향을 점검하러 나왔나 봅니다. 오혁 군은 이상하게 오래 전에 한 동네에 산 것처럼 뭔가 친숙한 느낌이 있습니다. ㅎㅎ 전생에 인연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혁오>는 요즘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그룹이라 이미 플레이리스트에 있습니다. 무대 장치도 이날 멋졌는데요. 깜깜한 밤하늘과도 너무 잘 어울렸죠. 많은 사랑을 받아서 나중에는 메인 무대에 선 모습도 그려봅니다.
고릴라즈의 음악들도 요즘 플레이 리스트에 있습니다. 지산에서는 가장 재미있게 뛰다가 온 공연인 것 같네요. 카리스마, 무대 장악력, 무대 장치, 멤버들의 합...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멋졌습니다.
새벽녘까지 음악을 듣다가 왔는데요. 또 귀에 걸렸던 것은 The fin. 이들의 <Night Time>라는 곡도 플레이 리스트에 있습니다. 뭔가 청량한 느낌이 있어 좋더라고요 :)
터지는 불꽃을 뒤로 하고, 숙소로 가는데 지산에서의 음악도 추억도 공기 중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을 것 같은 행복함이 들었습니다. 안녕! 내년에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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