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향] 불안하거나 vs 재미없거나 (1)



예전에 같이 일하던 동료가 있었는데요. 그녀는 웬만하면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도 남 이야기 하듯 객관화해서 말하고,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서 말할 때도 전혀 흥분하거나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죠. 마치 뢴트겐 사진을 보며 판독하듯이 분석적인 태도로 말하곤 했달까요.


그녀가 의젓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어쩐지 개인적으로 친해지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술을 한잔 하면서 속내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부모님은 자주 싸웠고, 그럴 때마다 자신은 숨이 막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고요. 그때마다 감정을 차단하고 합리적으로 상황을 분석해나가는 게 습관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한편으로는 편했지만, 더 이상 설레고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는 덤덤한 삶이 되어버렸다고요.


공부를 하면서 그녀가 쓰고 있던 방어기제가 편향(deflection)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편향이란 어떤 상황을 감당하기 힘들 때,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 접촉을 피해버리거나 자신의 감각을 둔화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Polster & Polster, 2012).


편향의 장점도 물론 있습니다. 지금 당장 감정적으로 휩쓸리지 않게 해 고통을 덜 느끼게 해 주죠. 하지만 고통스러운 당시로서는 효과적인 행동일 수 있지만 편향이 습관이 되면, 회피하는 만큼 삶의 활력과 생동감이 감소되어 무기력해지게 됩니다.(Clarkson, 1990)


스물한 살 때, 학생 기자로 처음 취재하러 가던 날이 생생합니다. 너무 긴장되고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했죠. 그 불안과 흥분 속에서 첫 취재를 마쳤는데요. 세월이 흘러서 여러 사람들을 인터뷰한 뒤에는 이 사람을 만나도 시큰둥, 저 사람을 만나도 그냥 시큰둥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매너리즘에 빠졌던 건 아닐까 싶었는데 저도 모르게 편향을 쓰고 있었던 거죠.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물론 인연이 되어서 지금까지 연락하며 지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스쳐 지나가버리는 관계가 되어 버렸고, 초반에 조금 대화하다 ‘아, 나랑은 뭔가 코드가 안 맞는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편향을 쓰기 시작하는 거죠. 


내적 에너지를 상대에게 쓰지 않고 대충 때우다 보면 부정적인 감정도 덜 느끼게 되지만 긍정적인 감정도 차단이 되어서 나중에는 인터뷰이 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고, 나중에는 ‘내가 그 사람을 만났던가?’ 기억이 잘 안 나기도 합니다. 


보통 편향을 잘 쓰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불안도가 높은 경우인데요. 보통 불안이나 죄책감, 갈등, 긴장을 피하기 위해 편향을 적응기제로 씁니다. 


Perls에 따르면 불안이란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흥분을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 감정을 느낄 때 흥분 에너지가 동원되는데요. 그 순간, 그것을 행동을 옮겼을 때 초래되는 좌절을 예상해 호흡을 멈춤으로써 흥분을 억제하게 되는데, 그때 느끼는 감정이 불안이라는 거죠. 즉 불안이란 흥분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막아버림으로써 해소되지 못한 흥분 에너지인 셈입니다.


이때, 불안을 막는 방법으로서 편향을 쓰지만, 그 대가로 삶의 활기와 생생함이 사라져버려, 사는 게 재미없어집니다. 그러면 편향을 쓰지 않고도 환경과 생생하게 접촉하며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이 길어지니 (클릭☞)2편에서 더 써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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