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추천] Irvin D. Yalom의 《삶과 죽음 사이에 서서》

ⓒ Reid Yalom


어빈 얄롬(Irvin D. Yalom)은 제가 무척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정신과 전문의이기도 한 그는 재담꾼이자 통찰력이 번뜩이는 작가죠.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당면한 문제가 매듭이 풀리듯 스르르 풀릴 때가 많아서 그의 책을 흔쾌히 펴들게 됩니다. 


특히 그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건드리기보다는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내담자 스스로가  통찰하게끔 등불을 들어줍니다. 그래서 얄롬의 독자가 되어 그가 만들어 놓은 길을 함께 걷는 과정은 스스로의 마음을 살피는 소중한 과정이 되기도 하죠. 


《삶과 죽음 사이에 서서》는 총 열 명의 내담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마치 아껴 먹는 초콜릿을 꺼내 먹듯이 10개의 단편을 하루에 하나씩 천천히 읽었습니다. 


제가 많은 영감을 얻었던 단편은 <아라베스크>입니다. 특히 아래와 같은 대목인데요. 


“나는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이 때때로 옛날 남자친구, 여자친구와 즉각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것을 알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동창 모임을 통해서 젊음의 기쁨, 어렸을 때의 학교 생활, 그때의 흥분에 찬 생활에 대한 꿈 같은 기대가 다시금 마술처럼 펼쳐진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그런 연상들을 통해 서로 사랑에 빠집니다. 그렇다고 어떤 특정한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그들의 젊음과 그 시절의 기쁨을 상징하는 모든 것들과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설명하는 요점은 세르게이가 당신의 마술 같았던 젊은 시절의 한 부분이었을 뿐이며, 그 당시에 세르게이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에 당신은 그와 사랑을 하게 된 것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당신이 세르게이에게 사랑을 불어넣은 것입니다.”

                 

                                                                                      _ 어빈 얄롬, 《삶과 죽음 사이에 서서》, <아라베스크>, P.55



<아라베스크>의 주인공 나타샤는 예순아홉 살이지만 그녀는 젊은 시절 사랑에 빠졌던 세르게이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녀는 세르게이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가슴 아파 합니다. 그러면서 “저의 진짜 삶은 모두 과거에 있어요.”라며 슬퍼합니다. 


그러나 얄롬은 나타샤에게 풀지 못한 숙제로 남은 세르게이가 사실 세르게이 그 인물 자체라기보다는 그녀의 화려했던 지난날, 푸른 청춘, 이루지 못한 꿈의 상징이라는 것을 통찰합니다. 


나타샤 역시 얄롬과 지난날의 이야기를 더듬어 나가면서 그녀 스스로가 세르게이(사실 그는 호색한에 바람둥이었죠.)라는 빈 괄호 속에 자신의 모든 꿈을 투사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러나 나타샤는 자신이 사랑의 신기루를 쫓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쉬이 세르게이를 놓지 못하죠. 사람의 마음은 묘합니다. 이렇게 알아차려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죠. 


몇 달 전 글쓰기 워크샵에서 한 청년을 만났습니다. (이 사례는 그의 허락을 받고 씁니다.) 그는 꿈이 뮤지션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K팝스타, 슈퍼스타K 등 각종 오디션에 도전했지만 늘 본선에서 떨어져서 상심해 있었습니다. 그는 뮤지션이 되지 못하면 죽어버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내면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면서 사실 그는 뮤지션이라는 꿈 속에 숨어 있는 욕망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그건 “음악을 하고 싶다. 내가 만든 음악을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 주고 싶다.”가 아닌 “유명해지고 싶다.” “돈을 벌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였죠.


그는 유년 시절, 공부를 잘하는 형에 비해 부모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한데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나간 가요제에서 장려상을 받아서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큰 칭찬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반한 후배가 지금의 여자친구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음악은 그를 인정받게 해 준 출구이자, 사랑받게 해 준 매개였던 셈이죠. 


그는 사실 음악을 만드는 것도, 오디션에 나가서 노래 부르는 것도 더 이상 즐겁지 않지만 결코 놓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욕망(유명해지고 싶다, 성공해서 사랑받고 싶다.)을 알아차리면서(이때의 진짜 욕망을 알아차리는 건 정말 소중한 지점입니다. Yalom 역시 이 지점의 욕망을 인정하고 알아차릴 때, 우리는 다음 갈 길을 찾게 된다고 말하죠.) 그는 맹목적으로 집착해왔던 뮤지션이란 꿈이 표면적인 꿈의 통로일 뿐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조금씩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라베스크>의 나타샤가 세르게이를 통해 자신의 꿈을 불어넣어 사랑해 왔듯이, 그도 진짜 욕망을 ‘뮤지션’이란 모자를 쓰고 찾고 싶어 했던 거죠.


저도 한때 어떤 사람을 맹목적으로 좋아하고, 그 사람에게 많은 것을 투사하고 그가 완벽한 사람이라도 되는 냥 바라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 그는 내가 갖고 싶은 것, 나한테 없는 것을 갖고 있는 사람(실은 나의 욕망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면서 그를 천천히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나 저 목걸이 갖고 싶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 욕망 안에는 다른 메시지가 담겨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 사랑받고 싶어.” “인정받고 싶어.” “오늘 정말 화가 났는데, 저걸 사서라도 풀고 싶다.”라는 속알갱이의 욕망이 있는 거죠. 그러니 어떤 것에 집착하게 될 때, 그 집착의 대상 속에 숨은 내 진짜 욕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삶과 죽음 사이에 서서》에는 우리의 진짜 욕망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또한 욕망을 향한 질주가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방어였음을 깨닫게 되면, 조금은 모자라도 이렇게 헤매어도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치유받게 됩니다. 


무언가에 집착하고 있는, 혹은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힘든 분들께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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