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 카메라] 좋아하지만 말이 안 통하는 3회 (1)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될 인물은 (클릭) 좋아하지만 말이 안 통하는  세계에 사는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어느새 남자는 여자의 집 안 면적을 다 차지합니다. 여자는 남자의 면적 일부가 되고 마는데요. 차라리 여자는 그 편이 나으리라 여깁니다. 그러나 남자는 여전히 여자가 아는 만큼 두려운 말을 합니다.


우리는 왜 아는 만큼 두려워지는 걸까요? 알기 때문에 두렵기도 하지만 어쩌면 알고 있다는 건, 그 이상은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상대를 볼 때(한 인물을 대면하게 될 때) 자기만의 인식 카메라가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한번 그렇게 찰칵, 하고 그를 찍어 두면 변하기가 쉽지 않죠.


찍어 둔 그 사진 속 윤곽은 너무나 단호하고 조금의 틈도 없기 때문에 수정이 들어간다는 것은 그 인물에게 큰 변화가 이루어지거나(혹은 보는 이의 관점이 변화되거나) 오랫동안 꾸준히 그 인식의 선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는 그의 모습을 보지 않는 이상은 언제까지나 내가 인식 카메라로 찍어 놓은 그 모습이 전부일 뿐입니다.


첫 사회생활을 하던 직장에 인턴들을 괴롭히던 상사가 있었습니다. 하필 그 상사와 제가 같은 동네에 살아서 늦게까지 야근한 날에는 막차를 같이 타고 간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제 마음은 당연히 불편했죠.


저랑 그 상사가 내리는 역은 종점이었는데요. 막차라 그런지 취객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종점인데도 취객들이 못 내리고 졸고 있으면 상사가 꼭 그분들을 흔들어 깨워 주는 거예요. “다 왔어요.” 하고요. 


상사의 그런 모습을 여러 번 보았음에도 제가 인식 카메라로 찍어 둔 상사의 모습은 ‘늘 별로’였기에 ‘아유, 웬 오지랖이람.’ 하고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회사를 옮기고 다른 상사와 지하철을 탔는데 그 분은 취객들이 종점에 와서도 곯아떨어져 있는데도 흔들어 깨우지 않더라고요. 


문득 옛 상사 생각이 났습니다. 그의 안 보이던 면이 보이더군요.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그렇게 흔들어 깨울 수 있다는 게 아무나 그럴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그의 그런 모습이 잘 안 보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단호했던 윤곽선에 조금의 틈이 나게 된 거죠. 당시에는 내가 판단하고 인식한 선에서만 그를 보았는데, 새삼스레 ‘따뜻한 분이었구나.’ 싶었습니다.


우리가 상대에 대한 인식 자체를 지울 수는 없더라도 조금은 수정펜을 갖고 있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단호한 선으로 닫아 두는 것보다는 점선으로 남겨 두는 게 한 사람을, 한 존재로서 온전히 보아낼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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