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길 맛집] 기억에 남는 와인바 스쿠로(SCURO)+ 할 수 있는 만큼만


오늘은 여유가 생겨서 작업실 꼭대기 층에 앉아서 거리를 내다 보고 있으니, 갑자기 뭔가 쓰고 싶어지네요. 저 많은 사람들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요? 


요즘 "새해 계획이 뭐야?" 하고 주변에서 물으면 저는 씩 웃으며 "뭐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고요."라고 말합니다. 예전엔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무언가를 써 두어야 마음이 든든해지곤 했습니다. 물론 계획을 쓰는 건, 어느 정도 무의식에 탁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꽤 중요한 것 같아요. 하지만 주렁주렁 쓰여진 계획을 보면 어쩐지 아주 두꺼운 책을 오늘 내로 다 봐야만 하는 압박감이 들죠. 결국 지키지도 못 하면서. ㅎㅎ


주변에서 보면 지혜로운 사람들 특징이, 크고 무거운 걸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잘게 나누어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목표를 잡되, 20m씩 후레쉬를 비추면서 오늘 하루를, 지금 여기를 사는 거죠. 중간에 가는 길은 하늘에 맡기고요. 오늘 하루에 충실한 겁니다. 


저는 올해 스스로를 아주 가볍게 여기고 싶어요.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길고양이의 앞발이나, 뭔가를 하고 있는 제 손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에게 얽매이고 싶지 않아요. 그냥 이렇게 하루하루 살다 보면 이런 점선이 연결되어 미래의 한 지점이 되어 있는 거겠죠. 스스로에게 부끄럽게만 살지 않아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요즘 예전에 갔던 까페나 음식점을 가 보면 이미 문 닫는 집이 꽤 많더라고요. 이게 자영업의 현실이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남아 있는 가게를 보면 괜히 반갑죠. 오랜만에 남부터미널 근처에 있는 (클릭☞) 마담 버터플라이 를 다녀왔는데요. 역시나 손님은 거의 없었지만(여긴 가면 거의 저 혼자 있다가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전히 손님이 없더라고요. 조용한 분위기를 찾는다면 이곳 추천해요),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왔습니다. 



마담 버터플라이는 꽃도 팔고 차도 팔고 케이크도 파는데요, 솔직히 커피맛은 좀 그렇지만 ^^; 당근케이크는 담백하니 달달, 맛나답니다. 내부는 이런 분위기에요.





오호, 오랜만에 왔더니, 뭔가 더 엔틱하면서도 내부의 식물들도 무성하게 자란 것 같습니다. 같이 간 친구들이 "와, 좋아. 이런 데 어떻게 알았어?" 하면서 즐거워합니다. 그래도 블로그 한다고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사진을 좀 자주 찍었더니 인물 사진 찍는 실력이 좀 늘어갑니다.



찰랑찰랑 반짝이는 큐빅 같은 A... 제 블로그의 열혈 애독자이기도 합니다. ^^ 제가 쓴 글의 일부분을 캡쳐해서 "이 부분 너무 좋아!" 하면서 카톡으로 피드백을 주는 사랑스러운 그녀.



수줍은 L.... 프랑스 여인처럼 나왔네요. 이 사진 보고 "으아아악 안돼!" 라고 할 까 봐 아주 작게 올려봅니다. ㅎㅎ 누군가를 찍었을 때, 제 마음에 들면 기분이 매우 좋아요. ㅎㅎ 이 사진 매우 마음에 드네요. 올해 그녀가 꿈꾸는 계획이 있는데, "넌 잘 할 수 있어!" 응원해 주고 싶습니다.



올 한 해도 이렇게 열심히 멍 때리면서, 즐겁게 살아봐야지. 하고 마음먹어 봅니다. 멍 때리는 게 왜 뇌에 좋은지는 다음에 써 볼게요. 뇌가 과부하가 될 때는 "멍 때리는 것"이 효과가 있거든요. 지금 좀 뭔가 머리가 복잡하다면, 잠시 저처럼 멍 때려 보시길 바랍니다. ㅎㅎ 뇌가 정화되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자, 이 집의 대표 케이크인 당근 케이크가 나왔습니다. 겉보기엔 투박해도, 먹을수록 자꾸 손이 가는 매력적인 케이크예요. 요 녀석을 먹으며  신나게 수다를 떤 뒤, 가로수길로 넘어가 봅니다.



가로수길도 참 많은 가게가 들어섰다가 사라지고 다시 들어서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 스쿠로(SCURO) 주인장이 글을 쓴 걸 봤는데, 정말 빼어나게 잘 쓰더라고요. 이를테면 이 와인에 대해서는 이렇게 표현을 했는데요. 




"진한 이탈리아 와인 냄새가 난다. 블루베리 , 바이올렛 , 약간의 잉크, 키르슈, 블랙체리 아이스크림. 부드러운 촉감이지만 마지막엔 카페트 같이 일어서는 느낌이 있는 타닌. 약간의 맛과 깔끔한 과일맛. 향만 맡아도 좋다 느낄 있는 와인으로 15 정도 후에 좋다. 오래된 나무 가구의 냄새도 슬슬 나기 시작한다." _ 천승범


어떤 미각을 가졌길래, 이렇게 섬세한 문장을 쓸 수가 있지? 카페트 같이 탁 일어서는 타닌의 느낌은 무슨 맛일까? 궁금해서 (클릭☞) 스쿠로 문을 디밀었습니다.



스쿠로(SCURO)는 아담한 규모의 와인바였는데요. SCURO가 무슨 뜻일까 궁금해졌습니다. 물어보니까 이탈리아어로어둡다 뜻이라네요. "사장님이 글을 잘 써서 왔어요."라고 하니, "아유, 우리 사장님은 와인  장인이에요! 그런데 제가 오늘은 오지 말라고 했어요. ㅎㅎ"라고 매니저 분이 유머러스하게 답하십니다. 



매니저 분이 추천해 준 와인은 로쏘 몬탈치노(Rosso di Montalcino). 미트볼이랑 먹으면 조화가 좋다고 해서 추천받은 레드와인이었는데요. 묵직하면서도 살짝 달콤한 맛이 나는데, 마실수록 뭔가 탄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짠, 건배를 하며 올 한 해도 잘 살아보자고 서로의 축복을 빌어봅니다. 안주도 빠뜨릴 수 없죠. 



아, 저는 이 미트볼이 정말 맛났어요. 생긴 건 평범해도 내 인생의 미트볼이라고 할 만큼 맛이 정말 입체적이었습니다. 다시 스쿠로에 간다면 이 미트볼 먹으러 갈 것 같네요. 토마토 소스의 묘한 맛이 느끼하지 않게 잡아줘서 묵직한 레드와인과는 정말 딱이더라고요. 



이건 치킨 살팀보카였는데요. 포르치니 버섯으로 속을 채운 닭가슴살이었습니다. 같이 간 친구들이 맛있다며 이 메뉴를 좋아하더라고요.  많지 않은 양인데, 정말 먹으면 배가 금새 불러옵니다. 식사 대용으로 먹어도 충분할 만큼.



와인을 마시며 친구들에게 "나-찾기" 프로그램을 돌려봅니다. ㅎㅎ 프로그램을 마치고 깨닫게 된 건 "사람은 함께 있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결국 삶의 질은 자기 자신과 잘 지낼 때 올라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전에 제가 좋아하던 교수님이 그러더라고요. "우리는 혼자 있을 때 다들 조금씩 이상해집니다. 밖에서는 근사한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자기 방에 홀로 있을 때는 바보 같은 생각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가 많잖아요. 자기 자신과 있을 때의 질을 높이세요."라고 하는데 소소하지만 대단한 통찰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들이 아무리 뭐라고 하든, 자기 자신과 잘 지낼 때, 일상에 윤기가 생기고 그 윤기를 모아서 또 생산적인 활동에 몰입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나누다 보니, 어느새 꽉 찼던 가게 내부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렸네요. 공연이 끝난 무대처럼요. 우리도 각자의 집으로 헤어져 돌아갑니다. 내일을 살아야 하니까요. 


스쿠로는 와인이 정말 맛있어서, 상대 마음을 사로잡을 땐 꽤 괜찮은 와인바가 아닐까 싶어요. :)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이 번 한주는 "할 수 있는 만큼만" 살뜰하게 살아내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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