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이런 나도 나인 걸



“아니, 어쩜 저럴 수 있지? 겉은 멀쩡하게 생겨서…….”  “그러게, 사람은 모른다니까.”  “생긴 건 헐크인데, 겪어 보면 완전 다정하다.” “야, 겉보기엔 천상 여자 같지? 기가 얼마나 센지 몰라.”


한 인물을 볼 때, 전혀 다른 면이 보이면 우리는 당황합니다. 그 격차가 크면 경악하기도 하죠. 예를 들어 평소 근엄해 보이던 제주지검장이 여고생 앞에서 바바리맨 쇼맨십을 발휘하다가 체포될 때의 모습, 평소 이미지가 좋은 사회적 지도층 인사인데 술집 종업원의 머리채를 붙잡고 술병을 깨뜨리는 모습, 얌전하게 생긴 이웃이 사람을 죽였다면?


이런 병리적인 모습을 보면 “어휴, 정말 말세야.”라며 혀를 끌끌 찹니다. 그런데 Rita Carter는 말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수많은 인격을 갖고 있다고요. 다만 저 위에 예를 든 사람들보다 일반 사람들은 좀 더 통합된 자아를 갖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격차가 현저하게 크지 않아서 그렇지, 누구나 때와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다른 행동을 합니다. 제 앞에서는 “크하하하!” 하고 웃던 친구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호호” 하고 입을 가리고 웃습니다. 집에서는 가부장적인 사람이 밖에서는 젠틀맨으로 통하기도 하고요.  차가운 직장상사가 일과 후에 술을 한 잔 하면 감상적으로 비틀거리는 얼간이가 되기도 하고, 한 치의 틈도 없던 골드미스 과장이 집에서는 “엄마! 아빠 따랑해요!”라고 철부지 어린애로 돌변합니다. 몹시 수줍어하던 사람이 갑자기 무대 위에만 올라가면 온몸을 흔들며 춤을 추기도 하고, 주의 깊게 식단을 살피며 몸매 관리를 하던 사람이 휴일에는 냉장고에 든 것을 몽땅 먹어치우기도 하고요. 


Rita Carter는 이렇게 일관되지 못한 모습이야말로 인격의 자연스러움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 격차가 크다면 치료를 받아야겠지만, 우리가 적절하게 융통성을 발휘하며 살아남기 위해 여러 방어기제를 쓰다 보니 내 안에 어린아이, 걱정꾼, 싸움꾼, 비판자, 순교자, 광대, 냉혈한 등 많은 ‘나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요. 


물론 제 안에도 여러 ‘나들’이 살고 있습니다. 제 안에는 자폐아, 연결자, 비판적인 아저씨, 걱정꾼, 장난꾸러기 소녀도 살고 있습니다. 


자폐적인 기질은 지금도 여전해서, 사람들이랑 놀다가도 혼자 방에 들어가서 자는 스타일입니다. 그냥 어릴 때부터 뭔가 혼자 책 읽고 공상하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재밌는 부분은 연결자가 튀어나와서 사회생활을 이어갑니다. 저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서로 막 소개시켜 주고 싶거든요. 제가 주선해 결혼한 커플이 두 쌍 있고, 정작 저는 그 모임에 자주 안 나가도 저를 매개로 결성된 모임들도 있습니다. 기자 생활할 때도 사람들을 연결해서 즐겁게 수다 떨면 행복했습니다.


제 안의 비판적인 아저씨는 좋게 말하면 통찰력이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어찌나 무서운지 저도 가끔 이 아저씨가 등장하면 깜짝 놀랍니다. ㅎㅎ 요즘은 이 아저씨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사실 내면이 공허해서, 외로워서 뭔가 더 잘 살고 싶어서 그런다는 걸 알기에 등장할 때마다 머리에 이쁜 리본을 달아 주며 뽀뽀도 해 주죠.


걱정꾼은 그냥 행동하면 되는데 주저앉아서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그림만 그립니다. 이 걱정꾼과 자폐아가 만나면 하루종일 걱정만 하면서 놉니다. ㅎㅎ


장난꾸러기 소녀도 제 삶의 생기를 주죠. 이 녀석이 있으니 그래도 재밌게 사는 것 같아요. 요즘은 장난기가 많이 가셨는데, 한때 저의 낙이 주변 사람들에게 장난전화 걸어서 놀래키는 거였거든요. ㅎㅎ


아무튼 아직 미발굴되어 그렇지 제 안에도 여러 자아가 또 숨어 있을 겁니다. 


생각난 김에 내 안에는 어떤 자아들이 살고 있는지 써 보세요. 

(전혀 다른 나의 모습,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어떤 면, 마음에 진짜 안 드는 면, 은근 자랑하고 싶은 면, 있어서 든든한 면, 좀 나아졌으면 하는 면 등등...)


이 모든 ‘나들’은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해 나를 지켜 온 인격들입니다. 간혹 이상한 방식으로 튀어나올 때도 있죠. 그래도 걔가 그렇게까지 튀어나온 것도 알고 보면 다 이유가 있습니다. 억눌리고 참다가 뛰쳐나오는 경우도 있고, 나를 지키기 위해서 올라온 경우도,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혹은 제 딴에는 스스로를 행복하게 해 준다고 한 게 좀 어긋나서 그렇지 자기네들 나름으로는 수많은 상황 속에서 나름 역동성을 발휘하며 살고 있습니다. 


Rita Carter는 우리가 이 녀석들을 한 팀으로 잘 일하도록 격려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가끔 우리는 자신이 조각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특히 내가 마음에 안 드는 나의 다른 인격들을 부정하고 회피하고 억압할 때 더 그런 깨져버린 느낌이 들죠. 모든 ‘나들’을 충분히 수용하고, 그래도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 모습들을 인정하고 사랑해 주세요.


욱, 하고 올라오는 양아치 같은 내가 느껴진다면 “아, 분했구나. 나를 보호하려고 그랬구나. 고마워.” 하고 귀 기울여 주는 거죠.


나의 보고 싶지 않은 면들까지 있는 그대로 아끼고 사랑할 때, 내 안의 여러 자아들도 좀 더 통합된 행동을 하니까요. ‘나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면서 행복하게 공존하는 법을 찾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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