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칼 융으로부터 배우는 번아웃 대처법 (3)

                                       

지난번에 (클릭)번아웃에 이르는 단계 대해 이야기 했었는데요. 어떻게 보면 편향은 모든 걸 차단한 채 무관심한 단계에 이른 방어 상태이기도 합니다.

 

편향할수록 겉으로는 페르소나를 쓴 채 기능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안에서는 곪아나가고 있는 걸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거죠.

 

정신적신체적 질환으로 드러나서야 그 곪은 자리가 욱신거리다 터져버렸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티를 내던 사람보다, 묵묵히 페르소나를 열심히 쓰고 살던 사람이 번아웃 된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여러 페르소나(Persona)를 쓰고 살아갑니다. 성실한 직장인, 좋은 부모, 착한 아들, 딸처럼 페르소나에 의해 만들어진 역할 대본(script)을 가지고 살아가는데요. 이 대본 안에는 성취와 인정이랄지 체면과 염치 등이 담겨 있죠.

 

보통 번아웃 된 분들의 내부 대화를 살펴보면 나는 반드시 ~해야만 해.”라는 should, must 화법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페르소나 밑에 눌린 나는 지금 너무 힘든데, “~ 해야 돼. 반드시 해야 해.”라며 스스로를 닦달해서 코너까지 내모는 거죠.

 

직무 스트레스 진단 항목을 분석하면 과도한 업무량이랄지, 근무 환경적 문제, 관계 갈등 등 번아웃의 여러 요인이 있지만

 

제가 주목했던 부분은 나를 지지하고 격려해 줄 첫번째 사람이 나임에도, 번아웃 된 나를 두 번 죽이고 있는 사람이 나인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지금 다리가 아파 절뚝거리고 있는데, 저 먼 거리를 지금 당장 누구보다 빠르게 걸어가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근하는 사람이 나 자신이라는 거죠.

 

물론 처음부터 should, must로 스스로를 내몬 건 아닐 겁니다. 처한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겠죠. 그런데 를 처음에 그렇게 억압한 것은 환경이지만, 이제는 환경+나 자신이 더해져 스스로를 억압하여 상당한 압력감을 주는 겁니다.

 

 

 

 

** 페르소나를 받아들이고 유연하게 다루기

 

저는 10년 전에 융의 분석심리학을 만났는데요. 융으로부터 얻은 수확 중 의미 있었던 지점이 바로 이 페르소나입니다. 융은 페르소나를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희생시킨 바탕 위에서 형성된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자신의 페르소나와 지나치게 동일시 되어 있는 만큼 그의 참자기(Self)는 희생되고 만다고 보는데요.

 

하지만 융은 페르소나를 제거해야 할 것으로 보기보다는 구별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사실 페르소나가 있어서 우리는 사회적으로 활동하고, 적절한 대인관계를 맺거든요(이부영, 2003).

 

 

 

여기서 잠깐, 페르소나 관련해서 죽 여러 논문을 보다가 재미있는 지점을 발견했는데요. 우리가 보통 낯간지럽게 보는 페르소나, 예를 들어 자기높임(self-enhancement) 페르소나를 쓰는 경우도 도움이 될 때가 있다는 거죠.

 

서로 잘 모르는 사이에서나, 상대를 설득시켜 협상하는 자리에서는 자기 높임 페르소나를 써서 유능함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이었습니다(Leary, M, R, 2002). “저도 사람인지라 잘 몰라유. 많이 도와주세유.”라고 자기낮춤(self-effacement) 페르소나를 쓰는 것보다는 잠재적 고객을 만났을 때, 프로페셔널하게 설명하고, 누구보다 이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인상을 줄 때 호감도가 올라갔다는 거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부풀린 페르소나를 쓸 경우, 내적 불안도도 올라갔는데요. 즉, 지나치게 잘 보이려는 욕심보다는 나는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유능함을 드러내는 편이 도움이 된다는 거죠. 

 

어느 정도 라포(친밀감)이 형성된 경우엔 self-effacement(자기낮춤, 겸손) 페르소나도 효과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자신을 잘 모르는 경우, 초반에는 카리스마를 보이는 경우 더 호감도가 올라갔다는 겁니다. 

 

요즘 CEO 조찬 모임 같은 곳에서 이미지 브랜딩과 코칭 쪽으로 프로그램이 많이 활성화되어 있던데, 페르소나 측면에서는 무시할 수 없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리더는 리더로서의 페르소나가 필요하다는 거죠.

 

다만 개인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페르소나에 지나치게 밀착되기보다는, 구별하고 의식하는 편이 낫습니다. 페르소나가 나의 일적인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거.

 

예를 들어 오랜만에 반가운 동창들을 만났는데, “나는 CEO.”라면서 목에 힘을 빳빳하게 주고 self-enhancement 페르소나를 쓰면 다들 속으로는 멀리할지도 모릅니다.

 

사례에 보면, 판사인 아버지가 아이들 앞에서도 시시비비를 가리니 가정 분위기가 싸해지면서 아이들이 아버지를 피하고, 소외감을 느낀 아버지는 본인이 뭐가 문제인지 모르고 괘씸해하면서 더 시시비비를 논리적으로 가리며 야단을 치기 시작합니다. 결국 가정이 해체되는데요.

 

융은 필요한 페르소나를 적절하게 돌려가면서 쓰는 융통성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라고 봅니다. 특정 페르소나에 고착되어 있거나 특정 페르소나를 억압하는 것은 자기실현에 큰 걸림돌이 된다는 거죠.

 

그래서 신축성 있는 적절한 페르소나는 성숙한 인격 발달로, 경직된 페르소나는 미성숙한 인격 발달로 보기도 합니다.

 

시종일관 완벽하게 맞는 하나의 페르소나는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는 거죠. 참자기(Self)로부터 억눌려진 것은 마치 스프링처럼 튕겨져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려 하기 때문에 페르소나를 적절히 교체해가며 온전한 통합적 자기와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관건이라는 겁니다.

 

 

 

제 주변엔 BTS 팬들이 참 많습니다. 하루는 친구가 유엔 연설을 보여주며 리더인 남준이를 마치 달라이 라마 보듯 칭찬하던데, 저는 한편으로 저 자리가 영광스러우면서도 얼마나 어렵고 부담스러웠을까.”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 엄청난 글로벌한 페르소나를 받아내려면 내부적 자기통합이 필요할 텐데, 요 근래 BTS의 <페르소나>를 듣다가 아, 이 친구는 자신의 페르소나를 역설적 방식으로 멋있게 통합하고 있구나, 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문득 생각나는 게, 예전에 계약직으로 일하던 아르바이트생 두 명이 회사에 있었는데, 한 친구는 늘 표정이 어두웠습니다.

 

그런데 다른 친구는 활기가 넘치는 겁니다. 하루는 같이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이 일을 왜 하냐고 물으니 생존을 위해서죠. 월세랑 식비, 핸드폰비가 필요해서요. 그런데 저는 이 일을 하는 제가 좋아요. 남들 볼 땐 알바생이지만 건전한 직업이고 앞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면 좋은 경험도 되겠죠. ”라고 하던데 자기를 어떤 직업적 페르소나에 묶어두는 게 아닌, 건강한 자존감이 느껴져서 좋더라고요

 

융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보다 내가 나를 속이지 않고, 나 자신에게 솔직하면 그 누구도 나를 지배하지 못한다.”

 

물살의 흐름을 타고 적절하게 부표를 옮겨가듯, 우리의 페르소나 역시 참자기의 바다 속 유연한 보트와 같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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