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튀김 이론] 너를 통해 드러나는 나



문득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니, 올 한 해 나는 무얼하며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는 열심히 공부만 하고, 논문에만 집중해야지 했는데, 기업 강의와 프로그램 진행하면서 시간을 다 쓴 것 같습니다.


저는 연말이 되면 한 해 동안 일어난 10대 뉴스를 작성해 보는데요.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한 번 써 보시길 바래요. 올 한 해 기억에 남는 열 가지 일을 기준으로 헤드라인을 뽑아 작성해 보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배운 점을 써 보고, 감사한 일다행인 일도 꼽아 봅니다. 


사실 어쩌면 10대 뉴스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일들을 통해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더 소중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올 한 해 너는 어떻게 살았니? 라는 질문을 받으면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하지만 10대 뉴스를 통해 그것과 나 사이의 어떤 길항과 역동을 들여다 보면, 어 나한테 이런 면이 있었구나.. 하는 지점을 통찰해 낼 수 있죠.




<라푼젤> 아시나요? 저는 어릴 때 꿈이 라푼젤이었습니다. 나만의 어떤 공간에서 세상 관망하는 라푼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더라고요.


하지만 라푼젤처럼 탑에 갇혀 있으면, 상처는 안 받겠지만, 외부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나를 들여다 볼 기회를 잃게 되겠죠?


그래서 내년에는 지금 하는 일을 조금 더 확장하는 사업도 시작하고, 더 많은 분들을 만나고, 논문도 얼른 끝내고 :) 단행본 작업도 들어갈까 합니다. 


어제는 동양 철학 강의하는 선생님과 차 한잔 했는데요. 궁합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비즈니스 파트너이든, 커플이든, 친구와의 사이든, 좋은 궁합기준서로 상생하는 기운 자리에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을 만나면 내 안의 아픈 부분이 더 돌올하게 만져진다든지, 나의 열등한 부분만 확대되어 보인다면 그다지 좋은 궁합이 아니란 거죠. 반대로 그 사람을 통해 내 안의 괜찮은 지점들이 자꾸 깨어나고, 나의 좋은 지점이 자꾸 발견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상생의 궁합이란 겁니다.


내가 무엇을 할 때 제일 행복한지, 누구랑 있을 때 즐거운지,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할 때 정이 떨어지는지, 나는 인정욕구가 강한 사람인지, 내 만족에 겨워 사는 사람인지... 등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게 될수록 상생하는 일과 만남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는 거죠.


저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는데요. 궁합이란 게 궁극적으로는 "너를 통해 드러나는 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일을 하는데, 내가 자꾸 바보 같고, 못하는 것 같고 발전이 안 느껴진다면 그건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어요. 어떤 사람을 만나는데 마음만 힘들어지고, 스스로를 책망만 하게 된다면 그 또한 좋은 인연이 아니기 때문이겠죠?


타자는 결국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대목인 것 같습니다. 


사랑스러운 분을 보면, 아 내 안에도 이런 말랑말랑한 지점이 있었네... 빙그레 미소가 지어집니다. 공격성 강한 분을 보면 내 안의 날카로운 이빨을 감각하며, 내 안에도 한 마리 짐승이 살고 있구나... 싶고요. 참 사람은 입체적이고 복합적이어서, 상대의 어느 지점을 통해 내 얼굴을 비춰나가는 연속의 과정인 것 같아요. 타자의 어떤 면을 보고 반응하기 시작했다면, 그 반응 지점을 통해 내 안의 몰랐던 지점을 알아차릴 수 있는 계기가 되죠. 


언젠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굴튀김 이론'에 대해 쓴 글을 보고, 이 분 작가이기 전에 섬세한 카운셀러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굴 튀김 이론에 대해 옮겨 볼까요?


얼마 전에 나는 이메일로 이런 질문을 받았다. 


"며칠 전에 취직 시험을 봤는데, 그때 '원고지' 4매 이내로 자기 자신에 관해 설명하시오'라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저는 도저히 원고지 4매로 저 자신을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불가능하지 않나요? 혹시 그런 문제를 받는다면, 무라카미 씨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프로작가는 그런 글도 술술 쓰시나요?"


그에 대한 나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안녕하세요.

원고지 4매 이내로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제 생각에 그건 굳이 따지자면 의미 없는 설문입니다. 다만 자기 자신에 관해 쓰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예를 들어 굴튀김에 관해 원고지 4매 이내로 쓰는 일은 가능하겠죠. 그렇다면 굴튀김에 관해 써보시는 건 어떨까요. 


당신이 굴튀김에 관한 글을 쓰면, 당신과 굴튀김의 상관관계나 거리감이 자동적으로 표현되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끝까지 파고들면 당신 자신에 관해 쓰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이른바 나의 '굴튀김 이론'입니다.


 다음에 자기 자신에 관해 쓰라고 하면, 시험 삼아 굴튀김에 관해 써 보십시오. 물론 굴튀김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민스 커틀릿이든 새우 크로켓이든 상관없습니다. 도요타 코롤라든 아오야마 거리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든 뭐든 좋습니다. 내가 굴튀김을 좋아해서 일단 그렇게 말한 것뿐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잡문집, p. 22-23>>



2019년은 어떤 계획과 꿈을 갖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 글 보시는 분들 모두, 마음 깊이 응원드립니다. 때론 좀 바보 같은 나일지라도, 그런 나를 알아주고 사랑해 주고 지지해 주는 새해 되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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