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질투는 나를 성장하게 하는 힘


어제 식당에서 어떤 분들이 이 뉴스에 대해서 (클릭 ☞) http://www.sedaily.com/NewsView/1S0W76EYTF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이야기하는데, 저도 모르게 귀 기울여 듣고 있었습니다. ㅎㅎ


한 쪽 만화가가 열등감 폭발이다. 저번에도 정우성을 저격했다. 왜 개념 있는 배우한테 자꾸 시비냐. 라며 힐난했습니다. 다른 한 쪽은 누군들 말은 쉽게 한다. 난민문제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민감한 쟁점들이 많다. 라며 만화가 편을 들었습니다. 


저도 관심이 생겨서 집에 오는 길에 기사를 보았는데요. 저는  이슈의 핵심이  '난민 문제'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이웃집 아저씨가 난민을 보살피자는 글을 썼다면 이 만화가가 그를 그렇게 콕 집어 저격하진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묘하게 질투라는 감정이 만져졌는데요. 나는 이렇게 치열하게 사는데 너는 럭셔리한 집에서 부와 명성을 누리고 있구나. 따뜻한 소파 위에서 그렇게 쉽게 난민 구호는 누군들 못 외치리? 누군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리? 라는 질투심 섞인 한탄이 느껴졌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질투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질투하는 것일까요? 이 질투라는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Richard Bandler는 질투에 대해서 '주어의 일치'로 봅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하나라고 느끼기 때문에 누군가 입에 신 레몬을 물고 있으면 내 혀에도 침이 고입니다. 누군가 억울하고 슬프면 나도 모르게 이입이 되어 눈물이 나고 화가 납니다. 월드컵에서 우리팀이 상대 국가를 이기면 으쓱하고 신이 납니다. 다 무의식적 주어의 일치에서 오는 현상이죠.


제가 좋은 물건을 샀다고, 저희집 강아지가 저를 질투하지 않습니다. 강아지 입장에선 주인 너는 너고, 나는 나거든요. 그런데 이웃집 강아지가 제 품에 안겨 있으면 으르렁거립니다. 주어 일치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질투는 이 주어 일치의 '간격 차이'에서 생긴다고 John Grinder 박사는 통찰합다. 그러니까 주어 일치가 일어났는데, 포개어지지 않고 마이너스적인 격차가 벌어지면 그 벌어진 차이만큼 질투라는 감정이 올라온다는 거죠.


이 주어 일치에서 홀가분해지는 방법은 없을까요? NLP에서는 용서하는 자비심을 갖게 되면 너와 나의 주어일치에서 해방된다고 말합니다.(제가 예전에 썼었죠. (클릭 ☞) http://persket.com/212 우리가 열 받는 것도 너와 내가 포개어진 주어일치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때, 용서하게쓰~ 라고 하면 너와 나의 주어 분리가 일어납니다. 열이 살짝 식습니다.) 또한 내가 갖는 자격지심, 열등감도 "그래쪄. 그랬구나. 그런 감정 느꼈구나. 그럴 수 있지."라고 나에게 자비심을 갖게 되면 그것이 나의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감정일 뿐, 나는 아니라는 것(본질적인 나는 그러한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거죠.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매슬로 아저씨의 '성장의지' 견해입니다. 우리가 왜 게임에 중독되는 줄 아세요? 내 레벨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 하고, 성장하고 싶어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질투라는 감정은 "나도 너처럼 잘 살고 싶어."라는 나의 성장의지에서 비롯된 거라는 거죠. 그러한 나의 성장의지를 존중해 주고, 지지해 주면 질투야말로 나를 성장하게 하는 힘이라는 거죠.


질투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이 나서 써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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