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식이 사라질 때] 사람이 생기 있을 땐 언제일까? (4)


예전에 '영업왕' 분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요. 저는 그 분들 말발이 대단하고, 뭣보다 사람을 사로잡는 카리스마가 있을 거란 기대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인터뷰해 보니, 정말 스타일이 제각각이더라고요. "아부지 돌 굴러가유."류의 느린 말투를 가진 분도 꽤 있었고, 달변가라기보다는 “그렇죠.” “네, 맞습니다.” 식의 백트랙(backtrack) 구사하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백트랙이란 상대가 무슨 말을 하면, 그러니까 예를 들면 “오늘 저 점심 때 짜장면 먹었어요.”라고 한다면 “아, 짜장면 먹었어요?”라고 상대방이 한 말을 그대로 따라하며 되돌려 주는 걸 말하는데요. 백트랙에 대해서는 다음에 정리해 볼게요.


암튼 이 영업왕들의 공통적인 특성이, 성실성, 근성 등등 여러 성공 요인들을 차치하고 제 눈에 인상 깊게 들어왔던 것은 “사람이 참 자연스럽다.”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수줍은 사람은 수줍은 대로, 자신을 억지로 꾸미지 않고 고스란히 수줍어하면서도 조근조근 할 말을 한다는 거죠. 


저 역시 자연스러운 사람을 만나면 일단 마음이 편해지고, 뭔가 방어막이 사라지는 기분이 듭니다. 도대체 이 자연스러움의 비밀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마음속에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연스러움은 자의식으로부터 놓여나 있을 때’란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자의식(egotism)이란 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자아가 외부(타자)의 반응에 민감할 때 주로 자의식이 나타납니다. 자의식이 형성되면,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신경 쓰게 되어 외부와 유연한 접촉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딱딱한 판대기 하나가 경계에 세워지게 된달까요. 클락슨은 자의식으로 말미암아 개체의 행동은 자연스러움이 사라지고 인위적이 된다라고 했는데요(Clarkson, 1990).


자의식이 많은 사람들은 상대와 눈을 잘 못 마주치고, 대중이 모인 곳에 나간다든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해야 한다든가 등등 많은 사람들로부터 시선을 받는 순간 그 자의식이 더 심해집니다. 타인이 볼 때 전혀 문제가 안 되는 사소한 자신의 행동이나 외모에 대해서 지나치게 신경을 쓰기 때문에, 타인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해 과도한 걱정을 하죠.


재밌는 건 자의식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투사된 검열이 꽤 중요한 작용을 하는데요. 투사된 검열이란 자신의 욕구나 감정이 바람직한지 그렇지 못한지 검사를 해보고, 그렇지 않은 것은 행동화 되지 못하도록 과도하게 통제하는 것을 뜻합니다. 


음,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투사된 검열이란 자신이 검열을 해 놓고, 타인이 자기를 검열한다고 착각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즉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다른 사람이 그러한 나의 행동을 나쁘다고 여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사실은 자기가 자기를 검열하면서) 스스로를 과도하게 통제하는 겁니다.


저는 짧은 치마를 스물다섯이 넘어서야 입기 시작했습니다. 여름에 친구들이 끈 나시에 핫팬츠 입고 나오면 “대중교통 탈 거면 그러고 다니지 마~.”라며 꼰대짓을 했는데요. 사실 아무도 저에게 “너 미니스커트 입지 마.”라고 한 사람이 없었지만 스스로 나의 가치 판단을 나에게 투사해 놓고, 남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 거라는 투사된 검열을 했던 거죠. 


하지만 투사된 검열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고 나의 가치 판단이지, 타인이 그렇게 생각하고 판단하는지는 알 수 없죠. 설령 타인이 나쁘게 본다고 하더라도 내가 나의 행동을 나쁘게 보지 않고 검열하지 않으면 자의식은 생기지 않습니다(Perls, 2012).


잠깐, 여기서 자의식과 알아차림이 헷갈릴 수 있는데요. 자의식은 내가 두 부분으로 분열되어 한 쪽을 억압하고 통제한다면, 알아차림은 ‘나’라는 통합된 관점에서(마치 커다란 곰이 왼손과 오른손에 오렌지를 놓고 이리저리 저글링하듯이) 알아차리는 거죠.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느 정도의 자의식은 불가피하고 또한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 자의식도 어떻게 보면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막이거든요. 하지만 너무 지나칠 때 문제가 되죠. 


펄스는 말합니다. “자의식이 과도한 사람들은 현실과의 만남을 통하여 시행착오를 거치며 현실에 적응하는 것을 학습하려 하지 않는다. 또한 타인으로부터 애정을 거부당하거나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을 도저히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 일은 그들에게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행동으로 나아가기 전에 ‘완벽한 준비’를 하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이 얻은 것을 충분히 음미하며 만족감에 젖어들지 못하고, 바로 다음 순간 또 다른 문제를 찾아 나섬으로써 끝없이 완벽을 추구하는 행동을 보이는데 이러한 행동은 자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아에 집착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이런 이에게는 일이 일단락지어질 때마다 잠시 멈추게 하고, 그들이 노력하여 얻은 것들을 충분히 음미하고 누리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 과도한 자의식으로 마음이 늘 무겁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지금, 여기”에 집중하기. 나를 충분히 믿어 주고 사랑해 주면 무의식은 절대 나를 죽을 방향으로 몰지 않거든요. 순간 순간 알아차리면서 그때 그때 할 수 있는 만큼 해나가는 겁니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기 _ (클릭 ☞)  한 번에 한 알의 모래 참고)


2. 억지로 애쓰지 마세요. 우주와 우리는 보이지 않는 생명력으로 이어져 있거든요. ‘나’라는 작은 자아에 우겨넣지 마시고, 무한대의 생명력을 믿어 보세요. 있는 그대로 당신을 사랑하는 뜨거운 생명력이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하고 보살피는 그 힘에 내어맡겨 보세요.


3. 시간이 날 때면 자연을 찾아서 그 대상과 하나가 되어 보는 연습을 하는 것도 과도한 자의식에서 벗어나는 좋은 방법입니다. 대상합일에 대해서는 클락슨이 언급한 부분이기도 합니다(Clarkson, 1990). 과도한 자의식으로 마음이 힘들면, 10초라도 멍 때려 보세요. 자의식이 사르르 녹아내릴 겁니다. 


4. 올라온 자의식을 평소에 자주 표현할 출구를 여러 개 만들어 놓으세요. 노래를 부르든, 그림을 그리든, 글을 쓰든, 아니면 빈 의자를 놓고 거기에 상대가 있다고 가정한 다음에 하고 싶은 말을 실컷 해 보는 겁니다. 이건 게슈탈트 치료에서도 자주 쓰이는 기법입니다. 


이 자의식이라는 것이 이렇게만 하면 샥 사라져! 할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그 녀석이 왔을 때 충분히 “왔쪄? 나 보호해 주려고?” 하고 토닥토닥 알아차려 주고, 꼭 안아주면 얘가 버터 녹듯이 사라지는 지점이 있거든요. 허공에 석고를 뜨듯이, 자의식이 오면 샥 형체를 잡아서 (수용하고 허용하고) 뽀뽀해 주면서 포옹해 주면 우주로 사라지는데, 이 방법은 제가 사람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 할 때 잘 써먹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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