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 사람은 경향성에 휘둘릴 수 있으나, 고정되어 있지 않다.



슈퍼비전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본인은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본인 스스로가 사람에 대한 가치 정립이 있어야, 앞으로 일을 하는 데 탄력을 받을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릴 때 제 눈에는 어른의 세계가 믿을 만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이익을 위해 사는 것이고, 약육강식의 세계이며, 단지 번식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되었다는 회의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은 과연 저 말에 확신을 갖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본인 스스로도 믿을 수가 없어서 저 말을 반복하는 건 아닐까? 그런 의구심 어린 시선을 가슴 깊이 숨기고 있었죠. 


겉으로는 사회적 룰에 따르며 잘 적응했지만, 속으로는 앞으로 팔십 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정규 교육 과정을 통과해서 대학에 가면? 그 다음엔 취직하고? 취직하면? 결혼하고? 결혼하면? 아이를 낳고, 아이를 낳으면? 부양하며 늙고 병 들어 죽을 일밖에 없는구나. 나는 왜 태어났지? 내가 원해서 이 세상에 온 것일까? 나는 어디에서 온 거지? 부모님의 난자와 정자에서 비롯된 하나의 물리적 개체인 것일까?


그러다 하루는 꿈을 꿨는데, 제가 이 세상에 오기 전에 어떤 에너지 자장으로 흩어져 있는 듯한 자각몽을 꿨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4차원쯤으로 보기 때문에 입 밖에 내진 않았지만 굉장히 기이한 경험이었습니다. 내 생각은 ‘나’라고 생각하는 어떤 ‘생각의 구성 틀’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각을 하게 됐는데요. 


예전에는 여기에서 살다가 죽음 통해 저쪽으로 건너간다고 여겼다면, 원래 나는 에너지 자장으로 흩어져 있었는데, 어떤 물리적 조건에 맺어져서 이 세상에 잠깐 와서 육신을 입고 말하고, 생각하고(에고 입장에서는 이 생각이 진리인 것처럼 여겨지죠.) 움직이며 살고 있구나, 란 생생한 체험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신에 대한 믿음(에고의 입장에서 믿는 하나님 부처님의 개념이 아니라)이 생겼는데, 인간이 믿는 어떤 선악을 뛰어넘은, 지극히 사랑덩어리인 에너지가 있구나. 이 높은 에너지는 낮은 에너지로 흐르는데, 사람은 낮은 에너지에 반응하면 분노하고 슬퍼하고 아파하는구나. 높은 에너지에 감화되면 기뻐하고 깨어나고 행복해하는구나, 하는 에너지 차원의 생기에 눈 뜨게 되었습니다.


천종호 판사님이나 김형희 선생님을 뵈면 감탄하게 되는 게 사람에 대한 어떤 상(像)이 없어서 굉장히 유연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비행청소년 아이가 오늘은 “선생님, 판사님 사랑해요!”하고 애교를 떨다가 내일 갑자기 가출해서 다시 비행을 하더라도 상심하며 괴로워하지 않는 건 당신들이 “내가 이러한 사랑을 주면 저 아이는 반드시 변화할 거야.”란 에고(ego) 입장의 어떤 고착화된 상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단 하루라도 누군가로부터 진심으로 사랑받은 기억은 그 아이 삶의 작은 불씨가 되어 준다.”란 순수한 사랑이 있기 때문에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그런 조건 없는 사랑을 전하고 있었던 거죠.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돈을 벌까? 부자가 될까? 온통 이런 것에 사로잡혀 있지만, 제가 인터뷰로 만난 사장님들(이윤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성장을 계속해나가고 있는 타입)은 일반적인 주류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의 가치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윤을 남겨서 나만 잘 먹고 잘 살지?”이런 개념이 아닌. “돈은 에너지다. 내 파장이 높아지면 돈은 절로 따라온다. 가장 파장이 높은 상태는 함께 더불어 성장할 때다. 세상에 내가 무언가 생기 있는 것을 줄 때 돈은 따라온다. 그건 나를 통해 오는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세상의 룰은 굉장히 제한적이다. 세상이란 매트릭스에 갇히지 말아라. 손을 봐라. 그것으로 눈을 가리면 어둡다. 그런데 손을 한 뼘 떼고 바라보면 손금이 보이지 않느냐. 이렇게 거리를 두고 보아야 한다.” 이런 탈융합된 시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너의 인간관은 무엇이냐? 사람을 보는 시선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저는 멀리 볼 것 없이 제 자신을 볼 것 같아요. 우리는 하루에도 무수한 생각을 하지만 그 생각이 본질의 나는 아니듯이, 사람은 어떤 경향성에 휘둘릴 수는 있어도(내가 어떤 전파를 수신하느냐에 따라 선한 마음을 품다가도 공격성이 올라올 수도 있고, 눈에 독기가 들어오더라도 순정한 에너지를 만나면 정화되고 다시 깨어나기도 하듯이) 사람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인간관 역시 제가 성장하면서 또 거듭 변화되겠지만요. 


정리하자면 나는(사람은) 어떤 상황, 조건, 환경, 타고난 기질 등등 수신되는 어떤 영향력에 따라 지배받을 수는 있지만,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게 제 관점이고, 그래서 변화할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게 제가 사람을 바라보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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