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introjection)] 스스로에게 새로운 목소리 선물하기



지난번에 내사에 대해 쓰겠다고 한 것 같은데, 생각난 김에 써 볼게요 :)


올 가을에 만난 내담자가 있는데요. (이 사례는 허락을 받고 공개합니다.) 이 내담자는 너무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매일 새벽 네 시에 깨워서 공부시켰고, 성적이 떨어질 때마다 야구 방망이로 떨어진 등수에 비례해 맞았습니다. 


졸거나 공부를 안 하면 “미친놈. 나가 죽어라. 등 따습고 배 부르니까 그 모양이지.” 주로 이런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속에 울분이 쌓여서 아버지에 대한 화풀이를 일기장에 욕으로 써 놓으면, 그 일기 본 아버지가 더 심한 욕을 하며 두들겨 팼습니다.  


이런 압박감 속에서 명문대에 들어갔는데요. 이후에 내면적으로는 깊은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별 문제 없어 보였지만, 뭘 하더라도 억지로 하는 일 외엔 의욕이 안 생겨서 하고픈 게 없다고 했습니다. 


교수님이나 선배가 “좀 똑바로 하지.”라고만 해도 “똑바로 안 해! 이 멍청아!”라고 혹독하게 질책하는 목소리로 들려더 무기력해진다고 했습니다. 


이 내담자의 자기 내부 목소리를 죽 점검해 보니까. 주로 외부(특히 아버지)로부터 온 목소리가 내사(introjection)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요.


내사라는 말이 좀 낯설죠? 사람은 성장해 나가면서 외부의 생각과 말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데요. 예를 들어서 “여자는 얌전해야 한다.” “남자는 울어선 안 된다.” 이런 말들도 내사의 한 종류죠. 


누구나 우리는 어느 정도는 내사하며 자라는데요, 문제는 내사를 하더라도 외부의 주장이나 가치관을 나름으로 따져보고 자기 방식으로 소화해서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꿀꺽 삼킬 때입니다. 


펄스(Perls)는 외부에서 들어온 것들을 우리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씹어서 흡수할 수 있는 ‘치아 공격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공격성을 전혀 쓰지 않고 꿀꺽 삼켜버리면-외부의 권위자가 너무 무서워서 그의 행동이나 가치관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외부의 것을 씹어 삼키는 데 필요한 ‘치아 공격성’이 내부로 향한다고 말합니다(Perls, 1969a, pp.128~145).


이러한 치아 공격성이 내부로 향하면 스스로를 비하하면서 괴롭히거나, 반대로 외부로 과하게 투사해 편집증적 공포심을 유발하는데요.


사람은 누구나 부모의 좋은 점과는 쉽게 동화해 자기만의 것으로 씹어 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쁜 측면은 쉽게 소화하기가 힘들죠. 그러니까 그냥 꿀꺽 삼켜서(내사해서) 내부에 밀어넣는데요. 그냥 내사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은 부유물처럼 떠서 한 인간의 삶에 장애를 일으킨다는 거죠. 


아까 위에서 든 사례에서 내담자 역시 아버지가 자주 했던 말들을 제대로 씹어 삼키지 못하고, 고스란히 내사해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는데요.


원래 내담자를 억압한 것은 환경(내담자의 아버지)이었지만, 지금은 스스로가 환경(아버지)을 대신해 자신의 욕구를 억압하고 있다는 거죠. 내담자는 서울로 대학을 와서 더 이상 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지 않지만, 스스로가 내사한 아버지는 내담자의 가슴속에 펄펄 살아서 언제나 시시각각 내담자에게 소리치고 욕하고 야구 방망이를 들고 있습니다. 내담자는 그러한 목소리가 재생될 때마다 사는 게 무력해집니다. 


게슈탈트 치료에서는 내사가 심한 내담자에게는 나쁜 부모의 이미지와 결별 작업을 권하는데요. 부모나 사회의 부당한 요구와 기대로부터 결별하고, 자신의 경계(니들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옳지 않으니, 나는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라고 치아 공격성을 사용할 수 있는)경계를 확실히 느끼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거죠.(Smoth, 1990; Clarkson, 1990). 


저는 내사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멜라니 클라인이 말한 것처럼 “실제 부모보다 내사된 부모가 훨씬 엄격하고 도덕적이다.”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예컨대, 아무도 그렇게 요구한 적도 없고, 또 그 정도로 극한적인 상황도 아닌데 아이는 “나는 절대 슬퍼해서는 안 된다.”라든가 “절대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려서는 안 된다.” 혹은 “절대로 나의 분노감을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지나치게 엄격한 내사를 스스로 채택하는 경우가 있다는 거죠.


내사에서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실제 부모의 교육이나 태도보다도, 그러한 부모의 교육이나 태도를 아이가 어떻게 내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거죠.(Brown, 1961).


저도 가끔 어릴 때 내사한 부분들에 대해서 다시 작업해 볼 때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제가 반장이었는데, 엄마가 담임선생님이랑 촌지 문제로 싸워서 ㅎㅎ(그때는 반장이 되면 교탁 커버랑 커튼, 촌지는 쓰리 세트였죠. 그런데 과하게 담임이 요구해서 엄마가 교육청에 찌르겠다고 해서 불거진 사건이었습니다.) 그때 담임이 저를 좀 미워하며 이런 말들을 했습니다. 


“너네 엄마는 고집이 세더라. 고집 센 딸이 그 모양이지 뭐.”


“반장이 비실하니까, 부반장이 이제 차렷 경례 해.”


“너는 소말리아 난민처럼 말라서 병 든 닭 같아. 밥 좀 많이 처 먹어라.”


“너랑 비슷하게 생긴 애가 있었는데, 하는 게 늘 재수가 없더라고.”


저는 뒤늦게 제가 억울하게 내사당했다는 걸 깨닫게 되더라고요. ㅎㅎ 그때 부모님이 걱정할까 봐 담임이 한 말을 전하지도 못했고요.


이제는 성인이니까, 이런 내사를 나와 분리해 보는 겁니다.


“담임이 인격이 덜 되어서, 그런 식으로 초등학교 5학년 아이한테 반응했구나.”


“너 얼마나 속상했니? 그 인간은 잘 살까? 그래도 그때 네가 잘 버텨 주었네. 고맙다.”


이런 작업을 하면서 내사한 말들이 내 안에서 떨어져 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혹시 내사의 목소리가 있다면, 다시 쓰는 작업을 꼭 한번 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뭔가 자기 비하 목소리가 들렸다면 과연 이 목소리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점검해 보는 겁니다. 죽 따라가 보면 외부에서 이런 식의 피드백을 한 사람이 있거든요.


그 사람의 피드백으로부터 스스로를 이제 분리해 보는 거죠. 


아래의 글은 위의 사례에 나왔던 내담자가 스스로에게 써서 선물한 내부의 목소리입니다. 휴대전화 배경화면으로 두었더라고요. 저도 좋아서 허락을 받고 휴대전화로 찍어 두었습니다. =)




○○아. 


나한테는 네가 제일 소중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 세상에 나로 태어나 줘서 고마워.


우리 같이 따뜻하게 살면서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자 사랑해


세상 모든 사람이 떠나도 

나는 너를 안 떠나고, 지켜주고 믿어주고 

사랑해 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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