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공연] 창작 뮤지컬, 사랑을 이루어 드립니다.



많은 작품을 무대에 올린 이만희 선생님에게 "좋은 공연의 요건이 뭐라고 생각하시냐?"라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습니다.


"한 트럭 운전수가 있어. 하루종일 고속도로에서 소변도 제때 못 누고, 열심히 물류 배달을 했어. 그렇게 고단한 일과를 끝내고, 딸내미가 준 티켓으로 공연장 의자에 앉았어. 그런데 졸리기만 하고,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거야. 포스트 모더니즘이 어떻고 저떻고, 인간의 실존적 의미가 어쩌고 저쩌고. 난 공연은 저잣거리에서 나왔다고 생각해. 내가 생각하는 관객은 피곤에 지친 가장이고, 트럭 운전수야. 그 사람이 공연장에서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게, 재미있게 그 공연을 즐길 수 있다면, 그리고 공연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갈 때 아주 작은 의미 하나라도 가져갈 수 있다면, 그게 좋은 공연이라고 생각해."


만희 샘의 관점에서 본다면, 올 가을에는 재미도 있고, 작은 의미도 있는, 행복한 공연을 두 편이나 만났네요. 


하나는 바로 김형희 선생님이 연출한 케인 앤 무브먼트(CANE & Movement)라는 춤 공연인데요. 장애가 있는 분들을 오디션을 통해 뽑아서 무대 위에 올린 작품이랍니다. 오로지 춤으로만 무대를 꾸몄음에도 그 안에 이야기가 살아 있어서,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게 흠뻑 빠져서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네가 장애가 있으니까, 부족하니까 성장해야 해." 이런 관점이 아닌, 그냥 그 사람 안에 자연스럽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 아름다움을 포착해서 끌어낸 느낌이랄까요. 


김형희 선생님은 내면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가 살고 있어서, 가끔 제가 놀러가서 수다를 떨다 보면 친구를 만난 것처럼 재미난 역동이 느껴집니다. 나이 차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점이 신기해요. 이렇게 무대 위에 올려 놓은 작품을 보면 선생님의 또 다른 모습이 느껴지는데요. 




이 무대 위의 분들은 모두 각자 장애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 장애가 전혀 눈에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일반 무용수들의 몸짓이 세련되고 정형화 되어 있다면, 이 분들의 몸짓은 홈이 파여 있는 만큼 거기에서 강인한 역동성과 자기만의 독창적인 무늬가 담겨 있달까요?


케인 앤 무브먼트(CANE & Movement)는 아쉽게도 공연이 끝나서, 다른 공연 하나를 추천해 드릴게요.


창작 뮤지컬 "사랑을 이루어 드립니다"인데요. 이 공연은 저와 아무런 인연이 없습니다. ㅎㅎ 지인에게 이끌려서 갑자기 대학로에 불쑥 들어가서 본 공연이랍니다. 




때로는 이렇게 아무런 기대 없이 그냥 백지와 같은 마음으로 보게 된 공연에서 빵빵 터지는 기쁨을 만끽하게 되는 것 같아요. 보니까 이 공연은 11월 26일까지 대학로에서 하네요. 


저는 공연장이나 영화관에서 꾸벅꾸벅 잘 졸아서, 예전에 문화즐겨찾기라는 코너 기사를 쓸 때는 실컷 졸다가 보도자료를 베껴 쓸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뮤지컬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만큼 웃음을 터뜨리며 보았으니, 별 4개를 줄 만합니다. 이만희 선생님의 트럭 운전사 관객도 저와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요? ㅎㅎ


무엇보다 자존감에 관한 이야기여서 더 흥미롭게 보게 된 것 같습니다. 누구나 그럴 때 있지 않나요? 왠지 저 사람 앞에 서면 내가 게만 느껴져서 다른 사람이 되어 만나고 싶은 마음? 지금 이 모습으로는 만나기 자신 없어지는 그런 마음이요. 

선배가 운영하는 센터에서 자존감 강화 프로그램을 요즘 진행하고 있는데요. 우리가 왠지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고, 다른 사람이 되고 싶고, 지금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마다 "~라는 생각을 믿고 있네"를 붙여 보는데요.

예를 들어서 나는 매력 없고, 인기도 없고, 평생 이렇게 외로울 거야. 라는 생각이 올라온다면,
-> 나는 매력 없고, 인기도 없고, 평생 이렇게 외로울 거야 라는 생각을 믿고 있네.  붙여 보는 겁니다.

나는 ____________________라는 생각을 믿고 있네.

만약에 철수에게서 "너 같은 놈은 뭘 해도 잘 안 될 거다."라는 말을 들었다면

철수는 "나 같은 놈은 뭘 해도 잘 안 될 거다."라는 생각을 믿고 있네.

이렇게 타자의 비난을 "       " 안에 묶은 다음에 타자 <그 생각을 믿고 있네>로 바꿔 보는 거죠

그것을 타자의 것으로 돌려 주는 겁니다. 

말싸움할 때, 상대가 제일 화나는 말이 뭔지 아시나요? "그건 네 생각이고!" 랍니다. ㅎㅎ

그러니까 상대가 뭐라고 어쩌고저쩌고 할 때, "그건 네 생각이고!" (혹은 "그건 선생님 생각이고요.") 라고 말하면 상대가 말문이 막히는 게, 그런 모든 이야기를 '당신 것'으로 돌려주기 때문입니다. 

암튼 대학로에서 재밌는 연극 한 편 보고 싶다면, "사랑을 이루어 드립니다" 추천해 드려요, 다 보시고 나서 "뭐? 이게 재밌다고? 그건 네 생각이고!"라고 하셔도 괜찮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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