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합리적 신념] 잠깐, 마음 멈추기


가을이 도래하니, 어김없이 감기에 걸리고 말았네요. 감기에 걸리면 일상의 질이 확 떨어지죠. 그래서 저는 감기가 정말 무섭습니다. 감기가 오려고 할 때, 종합감기약이라도 먹어 주는 센스가 필요한데 그냥 넘겼더니... 역시 제대로 앓고 있네요. 


이번 연휴엔 지인들과 청평사에 가려고 했는데... 이 상태로 가기엔 무리라 저는 며칠 후에 가기로 하고... 멍하니 있다가 노트북 앞에 앉았는데, 역시나 멍합니다... 


하지만 공부한 것들을 뒤적이다 보니, 지금 상황에 맞는 논문 연구 결과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픈 느낌, 생각이나 감정을 수용하는 것, 그것과 ‘함께’ 기꺼이 행동하려는 태도가 질병 관리를 가장 잘 예언한다(Gregg, 2004). (1) 질병에 대한 불편함을 기꺼이 수용하고 (2) 생각에 낚여들지 않으며(몸이 아프면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오므로) (3) 치료에 대한 의지를 갖고 행동할 , 치유가 시작된다(Gifford et al., 2004; Gregg, 2004).


혹시 몸이 아픈 분들이 계신다면 도움이 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통을 기꺼이 수용하되,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 몸을 돌보는 ‘치료적 행동과 의지’를 갖는 것. 이러한 메시지가 아플 때마다 자동적 사고로 떠오른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요즘 저는 ‘자동적 사고’에 관심이 많은데요. 자동적 사고란 주로 인지행동치료에서 많이 언급되는 용어입니다. 간단히 말해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갖게 되는 생각인데요.


이 자동적 사고는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아서 주의를 기울여야 포착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왜곡된 자동적 사고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생각에서 보는(look from thought) 게 아니라 생각을 보는(look at thought) 관점 필요한데요. 보통 왜곡된 자동적 사고는 비합리적 신념에 의해 형성된 경우가 많습니다.


합리적 정서 행동 치료(Rational Emotive Behavior Therapy, REBT)를 만든 엘리스(Albert Ellis) 박사는 비합리적 신념들에 대해 언급했는데요. 그녀가 말한 비합리적 신념 중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알아볼까요?


(1) 나는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아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다’라는 것 전제를 갖게 되면 사는 게 힘들어집니다. 어느 그룹에 가더라도 그렇지 않나요? 잘해 준 것도 없는데,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머지 보통 사람들은 어떤 상황(이해관계, 기분, 친밀도)에 따라 나를 대하는 태도가 그때그때 달라질 뿐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야 한다는 비합리적 신념을 갖기 시작하면 운신의 폭이 자유롭지 못하겠죠. 뭐 하나를 하려고 해도 욕 먹는 게 두려워서 시작하기가 쉽지 않고, 타인의 비난이나 비평에 주눅 들기 쉬우니까요. 심플하게 생각해서, 1/3은 나를 좋아하고, 1/3은 나를 싫어하며, 1/3 정도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정도로 생각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듯 싶습니다. 


(2)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면 모든 측면에서 능력 있고 합리적이며 유능한 사람이어야 한다. 


저는 마에스트로 분들을 인터뷰하면서 재미있었던 게 그 분야에서는 돌올한 두각을 나타내면서 막상 양말도 짝 맞춰 못 신어서 사모님한테 잔소리 듣는 모습을 볼 때였는데요. 어쩌면 공평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사람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어떤 한 분야에 그 정도 두각을 나타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었겠어요.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면에 완벽할 수는 없을뿐더러, 본인이 이러한 비합리적 신념을 갖게 되면 무엇보다 숨 막히는 삶을 살게 되죠. 나는 ~~한 사람이어야 한다, 라는 신념을 갖게 되면 그 조건이 어그러지면 ‘무능한 사람’(단지 일부분적인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것임에도)-이라는 라벨을 붙이게 되고, 쓸데없는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되죠. 


쓸데없는 열등감은 역시 쓸데없는 우월감(모든 면에서 탁월해야 한다)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문제는 앨리스 박사가 지적했듯이 그러한 관점을 갖고 있는 사람은, 타인에게도 그러한 비합리적 신념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특히 부모가 이런 신념을 갖게 되면 자녀들이 숨 막혀 하면서 어긋나 버리는 경우가 많죠.


(3) 어떤 사람은 나쁘고 사악해서 반드시 비난과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물론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면 법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겠지만, ‘내 관점’에서 어긋난다고 해서 분개하고, 하루종일 부정적 관점에 사로잡혀서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세상일에는 완벽한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사람은 누구나 선 악을 오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흑백논리의 칼날을 들이대기엔 미묘한 부분이 많죠. 


앨리스 박사는 남을 판단하여 처단하고 싶은 마음 속에는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미해결 과제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같은 상황을 보더라도 어떤 사람은 “으이구. 저러고 싶을까? 쯧쯧.” 혀를 차고는 자기 일에 집중하는데, 어떤 사람은 “아니,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도저히 나는 견딜 수가 없어.” 하고 하루종일 씩씩대기 시작한다면 그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부분’ 속에 내 무의식의 문제가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내 문제가 해결이 안 되어서 그 문제에 더 화르르 촉발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비합리적 신념에 대해 좀 더 쓰고 싶은데... 감기약을 먹었더니 갑자기 졸려서 다음에 이어서 써 볼게요. 감기엔 햇볕 쬐는 게 효과적이라는 논문이 있던데, 내일은 햇볕이나 실컷 쬐어야겠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추석 잘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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