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속초 가볼만한 곳] 조용하고 아늑한 순긋해변


예전에 여행 칼럼을 썼던 필자 분이 "주문진 쪽에 가면 순긋해변 가 보세요. 수심이  얕으면서도 물 색깔이 예뻐요. 사람들이 붐비지 않고 모래밭도 깨끗하고요."라고 했었는데요. 이상하게 순긋해변을 가게 되진 않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엔 마음먹고 다녀왔습니다. 


날이 흐렸는데도, 순긋해변 물 색깔은 정말 신비로웠어요. 색 바랜 듯한 한지 같은 느낌이랄까요? 옆에 경포해변에 비하면 정말 조용해서, 모래밭에 한참 누워 있었습니다. 경포해변이 잡지책 같은 느낌이라면, 순긋해변은 작은 시집 같은 곳이었어요. 뭔가 여백이 많은 느낌이랄까요?



실컷 누워 있다가 살랑살랑 걷기 시작하니까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해변에서 한 아이랑 아빠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있던데, 너무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찍고 말았네요 ㅎㅎ



순긋해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배가 고파졌습니다. 여기저기 배회하다가 '장치찜'을 파는 월성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장치찜을 한번도 안 먹어봤는데요. 같이 간 지인이 장치찜이 맛있다며 팔을 이끌어서 들어갔는데 ㅎㅎ



생선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제 입맛에도 너무 맛있었어요. 순한 아구찜 같은 맛이랄까요? 특히 국물이 달콤새콤하면서도 맛있어서 밥에 비벼서 슥삭 먹다 보니 한 그릇 뚝딱 공기밥을 비우게 되더라고요.  



가격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행을 할 때 별로 까탈스런 편은 아닌데요. 조금 예민한 게 하나 있습니다. 둘이 갔는데 하나 시켜서 나눠 먹자, 라든지 셋이 갔는데 2인분 시켜서 나눠 먹자, 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싫습니다. 


예전에 잡지사에서 야근할 때 음식을 시키면 나눠 먹자고 하던 선배가 있었는데요. 다이어트 때문에 그러는 건 이해가 가는데... 매번 그러니까 한번은 "저 혼자 먹을래요!" 하고 살짝 화를 냈답니다. ㅎㅎ 


그런데 정신분석을 받으면서 이런 마음이 '쌍쌍바'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쌍쌍바라고 아시나요? 



정답게 둘이서 나누어 먹는 쌍쌍바! 라고 쓰여 있네요. ㅎㅎ 이렇게 막대가 2개라 반반 쪼개어 먹을 수 있는 빙과였는데요.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쌍쌍바를 자주 사 주셨는데, 두 사람당 하나씩 해서 짝이랑 나눠 먹게 했습니다. 제 짝은 순길이라고... 식탐이 강한 아이였는데요. 얘가 반으로 쌍쌍바를 나누는 게 아니라 2/3는 자기 쪽으로 쪼갠 다음에 1/3만 저를 주는 거죠. 제가 몇 번 항의를 해도 맨날 그렇게 먹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어린 마음에 무의식에 남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ㅎㅎ 정신 분석 받는데 갑자기 그 선배 이야기가 나오면서 순길이까지 떠오르더라고요.


아무튼 말이죠. 갑자기 내가 화가 나거나 뭔가 확 올라올 때 "너 지금 몇 살?" 하고 물으면 그때의 내가 만져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 시켜서 나눠 먹자."라고 누군가 말했을 때,  "너 지금 몇 살?" 하고 스스로에게 물으면 열 살 때 순길이한테 쌍쌍바를 빼앗기던 제가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거죠. 


물론 혼자서 통찰하기가 힘들긴 하겠지만, 그래도 가끔 물어보세요. 뭔가 확 올라올 때 "너 지금 몇 살이니?" 하고요. 



배 부르게 밥도 먹었겠다, 이번엔 소돌해변 쪽으로 넘어갔는데요. 순긋해변처럼 고즈넉한 맛은 없지만 왠지 모를 활기가 느껴지네요. 순긋해변이 수줍은 느낌이라면 소돌해변은 뭔가 생동감 가득한 해변이랄까요?



소돌해변엔 아들바위가 있는데요. 그 뒤쪽엔 산책로도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바다를 보면 저는 어렸을 때 살던 곳이 생각 나서 아이 때로 퇴행하는 기분이 듭니다. 그때는 바다가 집 앞에 있어서 지겹도록 봤는데, 이젠 이렇게 찾아가야 만날 수 있는 존재라니! 



한 무리의 청년들이 위험할 텐데 저 바위까지 기어코 들어가네요. 밀짚모자에 라면박스, 캔맥주까지... 단체로 엠티라도 온 모양이네요. 참, 좋을 때다!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이 순간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누구나 어쩌면 지금이 제일 좋을 때일지 몰라요. 정현종 시인의 시를 떠올리면서 바다에게 안녕! 잘 있어! 내년에 또 만나! 하면서 미소 한번 날려줍니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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